지난해 12월 28일 저녁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커튼콜에서 남자 수석 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29)가 객석을 향해 두 번째 인사를 마치고 여자 수석 무용수 강미선(31) 앞에 무릎 꿇었다. 반지를 내밀었다. 두 사람은 2008년부터 연상연하 커플. 강미선이 발레단 선배다. 그녀는 동료 무용수, 스태프 몰래 준비한 깜짝 프러포즈에 놀라 눈물을 흘리며 반지를 받았다.
이 발레 부부가 오는 15~17일 서울 충무아트홀 개관 10주년 초청작 '돈키호테'에 남녀 주인공으로 선다. 지난 5월 결혼한 이후 '지젤'에 이어 두 번째 무대다.
지난달 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지난주 휴가 때 콘챠(콘스탄틴)의 고향 러시아에서 친지를 모시고 작은 결혼식을 또 한 번 올렸다"고 했다. "커튼콜에서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에게 무릎 꿇고 손등 키스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런 줄 알고 두 손을 내밀었는데 콘챠의 손에서 반지가 예쁘게 빛나고 있었어요. 놀라고 기쁘고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막 눈물이 났어요."(강)
두 사람은 2004년 발레단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열아홉 살 때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서 수석 무용수를 꿈꾸며 연습하는 노보셀로프를 강미선이 살뜰히 챙겨줬다. 연습이 길어지면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자장면 참 많이 먹은 것 같다"며 강미선이 웃었다.
2007년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역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고 사랑이 싹텄다. 노보셀로프는 "미선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러면 늘 함께하면서 보살펴주고 아껴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강미선이 거들었다. "콘챠가 끼니를 거르면 보양식도 만들어 먹이고 홍삼도 챙겨줬어요. 남자 무용수는 여자 무용수를 번쩍번쩍 들어올려야 하니까 힘내라고요."
'돈키호테'는 젊은 남녀의 사랑과 시련,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희극 발레의 대표작이다. 선술집 딸 키트리와 가난한 이발사 바질은 서로 사랑하지만 키트리의 아버지 로렌조는 딸을 멍청한 부자 가마슈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그때 엉뚱한 기사 돈키호테가 나타나 둘의 사랑을 지켜주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색감과 생기 가득한 무대, 유쾌 발랄한 인물들이 좌충우돌 해프닝을 일으키며 펼쳐보이는 춤이 객석을 사로잡는다. 강미선이 꼽은 '돈키호테' 명장면은 1막에서 바질이 키트리를 한 손으로 높이 든 채 오랫동안 음악을 타는 대목이다. "연습 때 아무리 완벽해도 무대에선 중심축이 틀어질 수 있어요. 호흡 잘 맞는 파트너는 그 비틀림까지 감지해 상대를 잡아주고 춤을 이끌어 가요." 강미선은 "근육이 뭉치거나 컨디션이 가라앉으면 같이 와인 마시면서 속 얘기를 다 풀고 이튿날 상쾌하게 춤추러 간다"고 했다. 노보셀로프가 덧붙였다. "연애 초기엔 다투면 소리도 질렀어요. 언제부턴간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지요. 결혼하니 싸울 일이 아예 없어졌어요."
앞선 공연보다 나아지는 게 이들의 목표다. "'저번에 파세(Passe) 동작을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편한 파세를 해야지' 같은 자세는 싫어요."(노보셀로프) 강미선은 "시간이 걸려도 더 힘든 동작, 더 아름다운 움직임을 생각하고 연습해야 나도 살고 발레도 산다"고 맞장구쳤다.
문의 (02)2230-6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