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패는 ‘건설 마피아(건설관료+마피아)’만큼이나 고질적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절반 이상이 건설·건축분야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건설부패는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일종의 ‘담합적 성격’ 때문이다. 건설·건축 관련 공무원과 업체 사이의 부정한 거래는 상호 윈윈(win-win) 게임의 속성을 지녀 외부인이 알기 어렵고, 소문만 무성할 뿐 폭로된 경우는 많지 않다. 요컨대 건설·건축분야 부패는 부정거래의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지만, 이들이 부패 당사자들이기에 실상이 드러나기 어려운 구조다.

공공부문 부패의 상당부분이 건설·건축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세종시 건설현장

지난 5월 초 대구·경북에서 적발된 뇌물수수 사건은 기초단체장과 국립대 교직원, 현직 시청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인 대표적인 건설부패 사례다. 경찰은 대구지역 D 건설업체로부터 압수한 영업장부를 뒤져 ‘뇌물상납 리스트’를 완성한 뒤 역추적을 통해 부패를 규명했다. 다만 일부 공무원이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를 한 대구지방경찰청은 공사감독이나 대금지급과 관련해 각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박모 전 경북 군위군수와 조모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영천시 공무원 이모(6급)씨를 같은 혐의로 지명 수배했다.

군수시절, 박씨는 2009년 8월 38억원 규모의 도로확장 공사와 관련해 예산을 조기집행해 주는 대가로 2차례에 걸쳐 520만원을 받았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초기, 경기부양을 위해 추진된 예산 조기집행을 빌미로 뒷돈을 챙긴 셈이다.

또 조씨는 2011년 11월 총공사비 48억원의 경북 상주지역 농경지 리모델링 토목공사와 관련해 설계변경을 승인해 주는 대가로 3000만원을, 경북도교육청 이모(6급)씨는 2011년 10월 포항지역 고교 기숙사 증축공사 관련 편의를 봐주기로 하고 세 차례에 걸쳐 현금 500만원을 각각 수수했다. 경북지역 국립대 교직원으로 퇴직한 전모씨도 재직 중이던 2010년 대학 내 연구동 신축공사와 관련해 감독 편의제공 대가로 200만원을 받았다.

특히 경북 영천시 금호읍사무소 이모씨는 37억원짜리 2008년 하이브리드 부품기술혁신센터 신축공사 관련 설계변경 대가로 6300만원을 수수했다. 이씨는 1차 경찰조사 후 잠적해 지명 수배됐다.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자치단체장과 공사감독 공무원·공기업 직원들이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구조적인 비리가 만연함을 확인했습니다. 건설업체는 수주를 위해 학연·지연·혈연 등 모든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시도하고, 공무원은 이 점을 악용해 갑의 지위에서 금품과 향응을 챙긴 것이죠. 이는 결국 부실시공과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주나 전주에서 사업하는 분들 한번 만나 보세요"

지난 1월엔 경북도청 이전추진단장으로 재직하면서 경북도청 신청사 수주 대가로 대우건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 칠곡 부군수 이모씨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9년에 벌금 5억2000만원, 추징금 4억9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부군수가 대우건설이 수주받을 수 있게 협조한 대가로 5억2000만원을 뇌물로 받았음에도 반성을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부군수의 친형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관료나 공무원이 개입된 건설부패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기자는 사정당국을 통해 한 중견 건설업체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로비가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가 수주실적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돈을 쓰니까 수주를 하는 것이고, 돈을 안 쓰면 수주실적이 확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건설업계의 현실을 냉담하게 말했다.

“경기 탓에 (건설부패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늘어날지 알 수 없어요. 술접대, 뇌물, 골프접대 등이 통하는 분야는 건설업계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재벌은 지난 50년간 토건(土建)으로 성장했어요. 이 과정에서 뇌물과 정치자금의 위력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 재벌 오너들입니다.

당시 원칙대로 하는 공무원은 월급만큼의, 조금만 눈 감으면 월급의 3배, 적극적일 경우 월급의 5배가량 뇌물을 챙길 수가 있었어요. 지금도 해마다 토건사업에 수백조 원이 들어가죠. 서울 강남을 보세요. 부동산 거품이 어떻게 해서 생겼겠습니까. 그 거품은 일종의 건설부패와 상관이 깊죠.”

그는 “로비만 하는 공무원 출신 엔지니어링(공공사업이나 플랜트, 토목사업에서의 설계분야) 회사 간부들이 문제”라고 했다.

“지금 건설업계를 보면, 로비만 하는 공무원 출신 엔지니어링 회사 부사장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토목설계를 하는 이는 적어요. 기술직 공무원들이 퇴직해서 노후생활을 보장받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감리나 설계분야의 성장속도가 더딘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어쨌든 공기업을 포함한 건설관료나 공무원들이 사업권을 쥐고 있다는 게 문제지요. 공무원들은 국민 세금으로 갑의 자리에서 사장 노릇을 하는 셈입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중앙부처나 고위 공무원의 경우 몸조심을 하지만, 지자체로 내려오면 부패 관행이 여전해요. 지방은 선후배로 얽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구조가 남아 있어요. 경북 경주나 전북 전주에서 사업하는 분들, 관급공사 하는 분들 한번 만나 보세요. 그쪽 토박이가 아니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건설업을) 못해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공급자(정부·지자체) 중심의 건설업이 대부분이다. 1970년대 이후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며 SOC 투자에 치중, 2004년 이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주춤하던 SOC사업은, 이명박 정부 이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2009년을 지나며 다시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늘기 시작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SOC 투자사업 중 교통시설 부문이 약 85%나 됩니다. 이중 도로투자에 대한 지출 비중이 약 50% 수준입니다. 지방에 가 보면 우리나라 도로가 얼마나 잘 닦여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어요. 2000년대 이후 과연 SOC 재정지출 규모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 정부 여기저기서 촉발됐지만, 건설관료 귀에는 마이동풍이었어요. 그런 무풍지대에 부패가 생길 수밖에요.”

점점 부패하는 대한민국…

국제투명성기구(TI)가 해마다 조사·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2011년 조사대상국 177개국 중 43위, 2012년 45위, 2013년 46위로 3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 7개 독립기구가 실시하는 국가별 '공직자의 부패' 정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공직자의 청렴도가 세계 46위라는 얘기다. 1~10위 국가는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스웨덴 등이고 46위인 한국은 슬로베니아나 몰타, 헝가리 등과 엇비슷하다.

지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축적된 한국행정연구원의 ‘부패인식도 조사결과’를 들여다보자. 설문에 답한 일반 기업체와 자영업자들이 11년간 공무원에게 금품 등을 건넸던 행정분야를 집계했더니 빈도가 가장 높은 기관은 ‘경찰’(23.1%)이었다. 다음으로 세무 17.0%, 소방 12.1%, 건축·건설공사 10.0% 순이었다. 11년 전체로 볼 때 건설·건축분야는 13개 행정분야 중 4번째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건축·건설공사분야가 16.9%로 가장 높게 나온 것이다. 세무(16.2%), 경찰(12.0%)이 그 뒤를 이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는 경찰(22.0%), 세무(21.5%), 소방(15.2%)분야에서 금품을 제공한 경우가 많았고 김대중(金大中) 정부 역시 경찰(25%), 세무(14.7%), 소방(12.2%) 순이었다.

금품제공 규모는 김대중 정부 때는 ‘30만원 내외’가 25.7%로 가장 높았으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10만원 미만’이 25.9%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만원 내외’와 ‘100만원 내외’에서 증가추세를 보였고 ‘30만원 내외’와 ‘10만원 미만’은 줄어들었다. 뇌물 단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자는 어느 실패한 부동산 건설 시행업자를 만났다. 그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PF?금융기관들이 특정 사업을 담보로 대출해 주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얻어지는 수입금으로 자금을 되돌려받는 금융기법) 대출이 한창 유행하던 2010년 무렵, 서울 강남 3구의 어느 알짜배기 땅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다. 강남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주상복합단지였다. 땅값만 따져도 수천억 원. 그에게 시행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행업은 일본식 표현이고 미국식 표현은 부동산 개발업입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사람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예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업입니다. 성공의 1차 조건은 허허벌판에서 개발 예정지를 찾아내는 혜안(慧眼)이 있어야 해요.”

재건축은 말 그대로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작업이고, 재개발은 재건축 지역에 도로망을 갖춰 주면 끝이다. 다만 주민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점이 난관이다.

한마디로 부동산 개발업은 개발되지 않고 빈터로 방치된 땅과 그 주변의 낙후된 집들을 사들여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이다. 그는 “이 사업은 투입자금의 20% 이상이 수익으로 남는다”고 했다. 제조업에 비하면 부가가치가 서너 배 이상이란 얘기였다.

“부동산 개발을 하려면 1차로 개발 예정지를 선정하고 땅을 사야 합니다. 2차로 관계 당국의 인허가를 취득하고, 3차로 공사비 등 필요자금을 조달해야 하며, 4차로 이름 있는 건설사에 시공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부동산 개발의 핵심 골격이죠. 땅값과 건축비, 금융비용, 각종 공과금 등으로 3000억원을 투입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예상수익은 600억원이었습니다.”

3000억원을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사업이란 내 돈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가진 1원으로 100원을 창출하는 신용창출이 경영의 기본원칙입니다. 돈은 성공 가능성이 있는 곳에 몰립니다. 우리나라에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대기 중인, 이른바 부동자금이 800조원이나 됩니다. 일부는 부동산에, 또 일부는 주식시장에 있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에 예치된 자금과 개인이 금고 속에 넣어 둔 돈을 합하면 그만큼 됩니다. 고수익이 있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게 경제원리입니다.”

“공무원,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는 伏地眼動”

그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

“사업가와 사기꾼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성공하면 사업가고, 실패하면 사기꾼입니다. 투자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위험할수록 투자이익은 더 큽니다. 사기꾼이라고 해서 애초부터 사기를 치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상대로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 돈을 갚지 못하니까 사기꾼이 되는 겁니다.”

시행사 자본금은 얼마였습니까.

“5억원입니다.”

초기 운영자금은….

“부친에게 물려받은 50억원으로 부동산 개발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무실은 어디에.

“강남 3구의 S빌딩에 있습니다.”

사실, 사무실이 번듯해야 사업가는 인정을 받는다. 강남 S빌딩이라면 한 달 임대료와 관리비가 최저 수백만 원이다.

건설 담당 공무원과 어떤 관계를 맺었나요.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당연히 기름칠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는 복지안동(伏地眼動)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공무원은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여자를 밝히면 여자를 붙여 주고, 노름을 좋아하면 일부러 노름판을 벌여서 돈을 잃어 주면 됩니다. 사업을 하려면 접대는 각오해야 합니다.

한번은 구청 6급 공무원이 우리 회사에 필요한 공문작성을 미루고 질질 끄는 거예요. 공문 초안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결재를 올리지 않는 겁니다. 그 공무원과 가까운 친구를 찾아내어 부탁했더니 승용차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차 종류까지 이야기해요. 요구하는 차를 뽑아서 키를 건네주었더니 바로 해결이 됩디다. 공무원 사회는 과장 이상보다는 그 아래 직급에서 더 썩었더군요.”

사업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된 점이 무엇입니까.

“제1금융권에서 PF 자금으로 2000억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제가 계약금을 주고 확보한 땅을 담보로 제공했죠. PF는 미래의 불확실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일반대출보다 이자가 높습니다. 하지만 비싸다는 강남 땅을 담보로 잡고 있었기에 은행이 돈 떼일 염려는 없습니다.”

“공무원이 가장 기겁하는 것은 민원인의 집단시위”

당시 그가 낸 PF 이자는 연 9%였다. 2000억원에 대한 1년 이자가 180억원, 한 달 이자가 15억원, 하루 이자가 5000만원인 셈이다. 부동산 개발에 가장 재미를 본 곳은 은행이다. 그의 계속된 말이다.

“공사가 하루만 늦어도 5000만원을 까먹는 상황에서 관할 구청은 개발 예정지를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해야 공사 허가를 내줍니다. 네모로 생긴 반듯한 땅은 논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지시 때문에 모퉁이에 있는 미꾸라지 지주들이 땅값을 공시지가의 다섯 배 이상 부르거나 아예 팔지 않겠다고 하면서 애를 먹입니다. 이를 피해 나갈 방법이 없으니 지주 설득에 몇 달이 걸리고 그 기간만큼 이자부담이 늘어납니다. 그런 모퉁이 땅들은 담장이나 출입구를 내는 방법으로 설계를 변경하면 아파트 건립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런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정을 하소연하면 공무원들은 ‘민원을 야기하지 말라. 전례가 없다’는 말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가장 기겁하는 것은 민원인의 집단시위입니다. 민원이 생기면 ‘올 스톱’입니다. 했던 일만 반복하지 말고, 전례가 없으면 새로 만드는 것이 국민을 위한다는 공직자의 자세 아닙니까?”

부동산 개발은 보통 몇 년이 걸립니까.

“땅 구입에서 건물 완공까지 최단 3년이 걸립니다. 땅 구입과 인허가 과정에 1년이 소요되고, 아파트나 주상복합 상가를 짓는 데 2년이 걸립니다. 3년을 예상하고 시작한 사업이 6년이나 걸렸습니다. 3년을 넘겨 금융이자로 540억원을 더 물었습니다. 우리 회사 예상 수익금 600억원 가운데 대부분이 은행이자로 공중에 사라진 것이죠. 게다가 건설회사는 설계변경 명목으로 공사비를 계속 올렸습니다.”

견뎌내기 어려웠겠네요.

“최초 계약한 공사비가 부가세 별도로 700억원이었는데, 설계변경 등 갖은 명목으로 건설사에서 100억원을 추가로 뜯어갔습니다. 건설회사는 도둑놈입니다. 공사비 700억원 중에서 20%인 140억원은 무조건 회사 수익으로 떼고, 그 나머지 80%를 협력업체라는 곳에 하도급을 줍니다. 우리나라 대형 건설회사 중에서 시공을 직접 하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는 토목공사 정도만 직접 하고 나머지는 전부가 하도급입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은행 이자에 추가 공사비를 물고 거기에 접대까지 해야 하니 뭐가 남겠습니까?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 봉급 등을 제하니 결국 남는 게 없었습니다. 여기서 뜯기고 저기에 밟히다 보니 우리 회사가 망했습니다.”

2014년 5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관피아 척결’ 관련 검사장 회의. 김진태 검찰총장은 “관피아 등 민관유착의 근절을 위한 수사에 검찰이 가진 모든 역량을 집중해 유착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 달라”고 당부했다

3명 중 1명은 ‘공무원 접대 불가피’

‘고위 공무원이나 권력층, 유력한 정치인 등에게 향응이나 금품을 주고 공사 수주·입찰을 위해 청탁하는 행위’의 경우에 대해 ‘해야 한다’는 의견(‘어느 정도 해야 한다’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를 합한 비율)이 30%대로 나타났다. 즉, 건설·건축 과정에서 공무원과 관련된 불공정 행위들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보는 사람이 3명 중 1명이었다.

그런데 불공정 행위의 요구는 누가 먼저 할까. 공무원이 먼저 할까, 업자들이 먼저 할까.

응답자 중 ‘거의 반반’이라는 응답이 43.7%로 가장 많았다. ‘업체가 먼저 제의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는 응답이 27.8%, ‘업체가 먼저 제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응답이 17.2%, ‘공무원이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응답이 6.0%, ‘공무원이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는 응답이 5.3%의 순이었다.

이와 관련, 대기업 건설사 전직 임원 P씨를 만났다. 현재 지방 관급공사 수주 따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토지 용도를 바꿔 특혜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에게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영업”이라며 조심스레 말했다.

“특혜라는 게 권력실세의 손에 의해 이뤄집니다. 관급공사를 수주하거나 부당대출을 알선하고 택지분양, 토지용도 변경까지 종류는 다양하죠.

이명박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보세요. 건설업자에게 공사 인허가 문제를 빨리 해결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2000만원과 미화 4만달러 등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구속되었잖아요. 이 건설사가 어떻게 성장했겠습니까. 원 전 원장이 서울 용산구청에 있던 1990년대 초반부터 인연을 맺으며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부패구조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로비가 통하는 건설시장이 문제죠. 몇 억짜리 공사에는 수백개 중소 건설사가 달려들어 경쟁하지만, 수천억짜리 공사에는 실적있는 대형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게 실적이고 도급순위입니다.

건설사의 현재 재무형편과 상관없이 도급순위가 높으면 1000억, 2000억짜리 공사를 따낼 수 있는 것이 업계 현실입니다. 몇해 전 대우건설을 둘러싼 인수경쟁이 있었잖아요. 부도난 대형사를 왜 인수하려고 기업들이 난리를 쳤겠습니까.”

건설업계에 따르면 뇌물공여와 관련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대형 건설업체는 전무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의 말이다.

“법인 처벌보다 행위자 처벌로 판결이 납니다. 그러니 건설업체는 대부분 무혐의 판결로 확정되고 직원에 대한 형법상 벌금, 집행유예 수준의 처벌로 최종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수주 영향권자인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조합 임원 등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할 때 건설사가 직접 나서지 않고 설계·홍보 용역업체 등 하도급을 맡은 ‘하수급업자’를 활용합니다. 만약 적발되면 ‘외부 컨설팅업체에 일괄 용역을 맡겼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죠. 하지만 시공사로 선정되면 건설사에서 해당 컨설팅업체에 1억여 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일도 있죠.”

경기지역 M 건축설계사 K 대표는 “요즘 하위권 설계업체들은 토목공사 물량 발주감소로 고전하고 있지만, 상위권 업체들은 점유율을 계속 늘려 가고 있다”며 엔지니어링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또 “건축과 건설분야에 불공정 행위는 비현실적인 법망과도 관계가 깊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소방방재시설 관련 규정은 건축법에는 피난거리, 비상구 등 20여 항목이지만 소방법에는 화재감지와 소화·제연설비 등 30여 항목이나 됩니다. 합쳐서 시설규정만 50개가 넘어요.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각 항목을 다 검토하지만 양 법의 충돌로 곤란을 겪을 때가 잦아요.”

예를 들어 건축법에서 피난안전과 관계된 규정이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건축설계가 완성된 이후에 소방시설에 대한 설계를 하다 보니, 소방시설 법령에 익숙지 않거나 소방시설 작동원리를 모르는 건축사일 경우 혼란에 빠진다.

“법이 충돌할 경우 공무원에게 물어봐도 ‘허가권자와 합의하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허가권자마다 견해가 또 달라요. 이것 때문에 기술사들이 시간 낭비를 많이 합니다.”

K 대표는 요즘 건설 담당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사 자체가 준 것도 있고 몸조심을 많이 합니다. 저희도 대놓고 로비할 수도 없고요. 만약 잘못되면 공무원 연금도 못 타니까….”

건축법과 소방법 충돌처럼 로비가 불가피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담당자나 그 윗사람을 알아 놓아야 해요. 또 담당자가 (법을) 모두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위에 계장, 과장도 있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못 한다’고 버티는 분은 잘 없어요. 만약 잘못돼도 (공직사회 분위기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니까….”

그는 속말을 털어놓았다. “허가권을 쥐고 있는 담당 공무원이, 아무 바라는 것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대놓고 밝히는 사람이 낫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규정 저 규정 따지고, 우리 직원을 불러 혼내고, 그러다 결국 허가를 안 내주겠다는 공무원도 있어요. 그럼 사업 망치는 거지요. 그러니 꼬장꼬장한 담당 공무원이 있다면, 처가 8촌 상갓집까지 찾아가 조의를 표할 정도로 마음을 사려는 게 업계 현실입니다.”

트집 잡힐 일을 안 하면 되잖아요.

K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 기자를 쳐다보았다.

“공사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고나 하자, 민원이 안 생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한 번 공사로 관계나 거래가 끝나는 게 아니고….”

왜 그런가요.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현장과 설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죠. 공사변경은 담당자와 수의계약이 가능한데 이때 ‘관계’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실 관급공사는 주인이 없어 이런 종류(설계변경)의 여지가 많다고 봐야 해요.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니, 돈이 더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막을 일은 아니죠.”

그래도 과거에 비해 깨끗해진 것은 사실이죠.

“과거엔 빨리 일 처리를 해 달라고 공무원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았어요. 요즘은 돈을 주나 안 주나 더 빨라지지도 않더라고요. 공무원 권한이 여러 부서에 분산돼 있기도 하고요.”

당신은 공무원 不正을 본 일이 있는가?

다시 대검 용역보고서로 돌아가 보자. ‘건설·건축과정에서 공무원과 관련된 불공정행위를 직간접 목격한 일이 있는지’를 240명의 서울·경기지역 건설업체 대표와 임원 등에게 물었다.

‘고위 공무원이나 권력층, 유력한 정치인 등에게 향응이나 금품을 주고 공사 수주·입찰을 위해 청탁하는 행위’에 대해 ‘소문도, 직접 목격한 일도 없다’는 응답이 73.3%(176명)였다. 그러나 ‘소문은 들었다’는 응답은 26.3%(63명), ‘직접 목격했다’는 응답은 0.4%(1명)였다.

‘공사도중 설계변경과 관련해 공무원 혹은 감리자 등에게 향응이나 금품을 지불하면서 설계변경 허가를 받은 행위’에 대해 ‘소문으로 듣거나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77.1%(185명)였고, ‘소문만 들었다’는 응답은 21.3%(51명), ‘직접 목격했다’는 1.7%(4명)였다.

‘토지 형질이나 용도 변경 등의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에게 향응이나 금품을 주고 인허가를 받는 행위’에 대해선 75.4%(181명)가 ‘소문을 듣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소문만 들었다’는 응답은 24.2%(58명), ‘직접 목격한 이’는 0.4%(1명)였다.

소문도, 직접 목격한 적도 없다는 비율이 70~80%대에 이른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지만, 소문만 들었다는 비율도 20%를 넘었다.

대검 연구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전통적인 유형은 건설산업에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관계에 해당하므로 설령 예전보다 좀 약화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들은 여전히 커다란 중요성을 가짐을 부인할 수 없다. 여전히 지속적인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공무원보다 교수 로비가 훨씬 쉽다”

건설업은 한마디로 ‘수주업(受注業)’이다. 수주를 위해 입찰, 계약단계의 금품, 향응 등 부정한 청탁이 과거부터 일반화돼 왔다. 경실련의 자료를 찾아보니, 1993~2008년의 15년 동안 적발된 뇌물수수 사건 750건 중 전체 공공부문 비율에서 주택·건설분야가 55.1%를 차지한 것으로 나와 있다.

같은 기간 전체 뇌물 수수자는 1867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1388명, 비율로 볼 때 74.3%가 공직자였다. 민간인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장, 대학교수, 금융기관장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대학교수가 왜 다수 포함돼 있을까. 기자와 만난 사정 담당자는 “턴키·대안 입찰공사와 관련한 심의비리 연루자가 다수”라고 말했다.

턴키제도(일괄입찰제도)는 주로 대형 관급공사 입찰·수주의 방식 중 하나로 설계와 시공을 일괄적으로 입찰하는 제도를 말한다. 턴키·대안 발주공사 등은 다른 공사에 비해 낙찰률이 높고 단가가 세서 건설업체 간 수주경쟁이 거센 반면, 뇌물제공 등 부패행위가 상존하는 구조다.

정부의 사정 담당자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보통 입찰평가(심사)위원은 기술직 공무원, 대학 교수 등으로 반반씩 구성되는데 일단 명단이 공개되면 입찰참가 업체와 접촉이 금지됩니다. 건설사가 평가위원을 만난 사실이 알려질 경우 감점요인이 돼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제삼자를 이용한 접촉’이 빈번하게 이뤄집니다.”

어떻게요.

“예를 들어 대형마트나 시장 등 다중밀집 지역에서 우연을 가장한 접촉이 시도되기도 합니다. 건설업체에서는 ‘공무원보다 대학 교수 로비가 훨씬 쉽다’고 입을 모아요. 턴키 입찰이 끝나고 해당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대가 지급이 이뤄지기도 하고요. 턴키심사에서 평가위원이 특정 업체에 점수를 몰아주거나, 반대로 경쟁업체에 낮은 점수를 주는 경우도 있어요. 몰아주는 방식은 다양하죠.”

보통 평가항목은 설계계획, 전기, 기계, 구조 등인데 채점이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형건설사가 설계사무소를 통해 교수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식이다. 그는 “청탁하는 쪽이 자기 회사 점수를 많이 달라고 하기보다 경쟁업체 점수를 최저점 처리해 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도 하더라”고 했다.

그 많은 교수 중에서 평가위원은 어떻게 해서 선발되나요.

“평가단 후보가 100명 정도로 보고, 그중에서 10명을 뽑는다고 치면, 확실한 5명만 잡으면 공사를 따낼 수 있잖아요. 대기업은 교수 100명 모두를 관리할 수도 있겠지요. 누가 될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평가위원을 발표하는 당일 새벽에 모든 후보의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청탁을 할 수 있지요.”

한 대학교수의 양심선언

대검 연구보고서를 보면, 턴키공사가 도입될 초창기엔 후보 교수들의 풀이 수천 명씩이나 되었다고 한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엔 그 수천 명을 모두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 8월 경기도 교하 복합커뮤니티센터의 공사입찰 심사에 참여한 대학교수가 양심선언을 하면서 심사위원 규모가 축소됐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당시 센터 입찰에 관여한 인물을 만났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서울 A대 공대 이 모 교수는 교하신도시의 복합커뮤니티센터 공사를 따낸 금호건설의 직원에게서 백화점 상품권 1000만원어치를 건네받았다. 이 교수는 입찰평가위원이었다. 거액의 상품권을 받은 이 교수는 그러나 그 길로 경찰서(경기지방경찰청)를 찾아갔다.

“당시 파장이 컸어요. 경찰이 센터 공사와 관련한 서류를 죄다 압수했고 평가위원 선정, 명단 사전유출 과정 등 광범위하게 수사가 진행됐거든요.”

복합커뮤니티센터 공사에는 금호건설 등 3개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했고 2009년 7월 17일 심의위원회에서 금호건설이 시공사로 결정됐다.

“시공사로 결정되자 건설사 측에서 교수 연구실을 찾아와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 100장을 놓고 갔어요. 이 교수는 전자·통신 설비분야의 심의를 맡았는데 디자인이 독특해 당시 금호건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해요. ‘교수님 덕택에 점수 차가 좀 나서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 준비했다’는 것이었어요.”

경기지방경찰청은 이 교수 진술을 토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돈을 전달한 금호건설 직원 8명과 입찰비리에 직간접 연루된 평가위원, 통신업체 직원, 파주시청 공무원 등 4명을 뇌물수수·공여,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뇌물에는 공무원도 예외가 없지요. 파주시청 팀장급 공무원은 평가위원 후보자 918명의 명단을 건설사 측에 넘겨주는 대가로 3000만원을 받는 등 3회에 걸쳐 모두 8000만원을 받고 수차례 술접대를 받기도 했어요. 평가위원 명단은 절대 공개해선 안 되거든요. 또 한 평가위원은 입찰 당일, 그것도 새벽에 미화 4만 달러를, 다른 평가위원은 상자 2개에 각각 1000만원씩 담아 모두 2000만원을 청탁비 명목으로 받았어요.”

뇌물을 전달한 건설사는 임직원의 ‘개인 차원 뇌물공여’라며 회사의 관여를 부인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소송 당시 임직원의 변호사 선임과 벌금을 건설사가 대납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대형 건설사들은 어느 정도 몸을 사리게 됐다”며 “하지만 건설업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되면 언제 어떤 일이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검 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다시 정부 사정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교수도 문제지만 요즘엔 공기업 쪽 인사들이 더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공무원이야 눈치도 보고, 자정(自淨)된 분위기지만, 준(準)공무원 신분인 공사(公社), 공기업 쪽까지는 못 미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공사수주 대가를 받은 LH 직원이 구속됐는데 차명계좌를 만들어 10여 차례에 걸쳐 5650만원을 챙겼다고 합니다. 공무원조차 엄두를 못 낼 차명계좌까지 만들 정도입니다.

지난달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옛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월성건설센터장이 시공사와 건설업체로부터 설계변경을 통한 공사비 증액의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았다가 기소되기도 했어요. 심지어 공기업 간부인 남편을 대신해 부하직원의 부인들에게 인사청탁 뇌물을 받은 ‘사모님’이 재판에 넘겨진 일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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