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만 대형 록 페스티벌(록페) 5개가 격돌했던 작년 여름은 역대 최고의 록페 시즌이었다. 올해는 그중 2개가 없어졌고, 하나는 반신불수가 됐다. 안산밸리 록 페스티벌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 지역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스폰서인 CJ가 취소를 선언했다. 지산 월드락 페스티벌은 작년 라인업에만 수십억원을 들이며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엄청난 적자를 내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작년 조용필 효과를 톡톡히 봤던 슈퍼소닉은 대관(貸館)조차 안 돼 비틀거리다가 다른 페스티벌에 팔린 셈이 됐다.
올해 록페는 그래서 펜타포트(8월 1~3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 시티브레이크(8월 9~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나우(8월 15~16일 서울잠실종합운동장) 3파전으로 좁혀졌다. 슈퍼소닉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8월 14일 하루 치러진다. 무대 하나에 8개 팀이 오르는 '반쪽 페스티벌'로 같은 곳에서 열리는 나우 전야제가 된 모양새다.
◇펜타포트―흔들리지 않는 맏형
펜타포트엔 깜짝 놀랄 뮤지션이 없지만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9년째 꾸준히 80점 이상의 무대를 꾸며왔다. 올해 다른 록페는 댄스와 아이돌이 난무하지만 펜타포트는 우직하게 정통 록 위주로 구성됐다.
올해 헤드라이너 중 가장 기대되는 팀은 영국 록밴드 카사비안이다. 8월 2일 마지막 순서를 장식할 이 팀은 2004년 데뷔 앨범 이후 늘 팬들을 만족시켜 왔으며, 특히 올해 내놓은 5번째 앨범 '48:13'은 그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을 만하다. 오랜만에 새 음반을 낸 국내 밴드 불독맨션, 미국 스래시메탈 밴드 수어사이달 텐던시즈, 영국 얼터너티브록 밴드 스타세일러가 눈에 띈다. 1일권 8만8000원.
◇시티브레이크―현대카드의 머니파워
작년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올여름 록페 중 라인업이 가장 화려한 무대. 다른 록페 헤드라이너 세 팀의 개런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비싼 마룬 파이브가 10일 헤드라이너로 나선다. 마룬 파이브 음악이 록이냐 팝이냐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줄기차게 히트곡을 내는 밴드임엔 틀림없다. 첫날인 9일 헤드라이너는 오지 오스본.
이제 더 이상 돼지 피를 뿌리거나 산 박쥐를 물어뜯지 않지만, 올여름 록페 모든 출연자 중 가장 록 스피릿의 원형에 가까운 정신을 보여주는 밴드다. 미국 신예 밴드 네이버후드, 팝펑크밴드 뉴파운드 글로리가 관심을 끈다. 이스턴사이드킥, 아시안체어샷, 러브엑스스테레오 같은 국내 알토란 밴드들을 싹쓸이한 것도 특색 있다. 1일권 16만5000원.
◇나우―록페라고 하기엔
느닷없이 AIA생명보험이 스폰서로 나선 페스티벌. 싸이를 비롯한 YG의 아이돌들과 레이디 가가가('가가'는 이름, 나머지 '가'는 주격조사) 헤드라이너이니, 이것을 록페로 봐야 할지 고민스럽다. 게다가 크레용팝까지! 1일권 12만6000원을 내고 이 공연을 볼 록 마니아는 흔치 않을 듯. 다만 아이돌 보러 간 아이들이 갤럭시 익스프레스, 로큰롤 라디오처럼 출중한 국내 록밴드를 보고 내년엔 진짜 록페에 가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