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란의 아름다운 사람] 채우기에 급급했던 삶… 비운 뒤 새롭게 보이는 것들

조선일보
  • 김경란 방송인
입력 2014.07.26 03:02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

김경란 방송인
김경란 방송인
"진짜 잘 쓰는 사람은 잘 줄이는 사람이야." 뉴스 앵커 멘트를 쓰며 선배들이 하는 얘기였다. 길고 자세하게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간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울림의 여백을 주는 멘트는 전체 흐름을 읽는 안목이 생겨야 가능하다 했다. 치열했던 젊은 날, 난 매일 새벽마다 앵커 멘트를 쓰며 생각했다. 줄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부지런히 모으고 가득 채워야 잘 사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채우기에 급급한 삶보다 오히려 군더더기를 줄이는 것, 그래서 마음의 공간을 만들 줄 아는 인생이 더 지혜롭고 빛나 보인다.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느린걸음)은 머릿속을 꼭꼭 채워주기보다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기에 내가 진짜 원하는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시점이 필요하다. 잡고 싶은 수많은 것 중 가지를 치듯 줄여보는 것이다. 난 무엇에 가장 가치를 두고 사는가. 그것이 혹시 채우고 채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살다 인생의 끝을 맞이하면 허망하진 않겠는가.

작가는 지구별 구석구석에서 소중히 여길수록 빛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가 처음 말하고 첫 걸음마를 떼던 날을 기억하며 함께인 순간을 쌓아가는 인도네시아 농부 아빠에게서 사랑의 의미를 건져낸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먼 훗날 한숨지으며 내 살아온 동안을 돌아볼 때 '아,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으로 함께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 시간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그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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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인레 호수에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이의 뒷모습은 이렇게 얘기한다.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못지않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지요. 모든 것은 물결처럼 사라지겠지만 사랑은 남아 가슴으로 이어져 흐르겠지요."

충만한 삶은 무엇일까. 하루를 잘 살아내는 건 무엇일까. 내 것을 채우는 것보다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아닐까. 세상 눈치 보기보다 소중한 이들에게 감동 받고 감동 주는 것 아닐까. 그렇게 살고 나면 생의 마지막 날 후회가 없지 않을까.

티베트에서 인도까지의 여정을 마친 작가의 소회가 대지에 부는 바람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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