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천재가 말했다 "난 쉬운 대답을 모르는 사람"

조선일보
입력 2014.07.26 03:02

SF·공포·시대극 등 영화 연출의 巨匠 스탠리 큐브릭 인터뷰 엮은 국내 첫 책
개봉 당시 작품마다 논란·비판의 대상… 연출 초기엔 생계 위해 내기 체스 두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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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진 필립스 엮음|윤철희 옮김|마음산책|372쪽|1만6000원

"영화 연출의 최고 거장. 우리는 모두 그의 영화를 모방하느라 허덕였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정의한 스탠리 큐브릭(1928~1999·사진)이다. 큐브릭은 SF('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공포('샤이닝'), 시대극('베리 린든' '스파르타쿠스'), 전쟁물('풀 메탈 자켓') 등 모든 장르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걸작을 연출했다. 그는 열정적 독서광이자 영민한 철학자였고, 시대를 앞서가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리고 미치광이 소리를 들을 만큼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스필버그와 세간의 평을 합쳐보면 큐브릭은 '광기의 천재 거장'이다.

큐브릭은 정작 이런 평가에 동의했을까? 이 책은 이젠 들을 길 없는 큐브릭의 대답이다. 생전 인터뷰를 엮어 생생한 그의 목소리를 복원했다. 큐브릭은 말보다 글을 좋아했고, 인터뷰와 기자를 싫어했다. 그래도 자신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기자들을 만나 몇 시간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국내에서 출간된 큐브릭 관련 첫 책이다.

스탠리 큐브릭.
/마음산책 제공
◇생계 어려우면 '내기 체스'로 끼니 때워

큐브릭은 1928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는 큐브릭이 열두 살 때 그에게 체스를 가르쳤고, 열세 살 때 카메라를 주고 사용법을 알려줬다. 학교 성적은 형편없었다. 고등학교를 평균 성적 67점으로 졸업했다. 그는 잡지사 소속 사진작가로 일하다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다. 초기 작품부터 연출은 물론 제작, 시나리오, 후반 작업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했다. 그는 감독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약간의 지식, 원대한 포부와 재능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큐브릭의 팬이라면 들어봤을 그의 영화 입문기다. 하지만 그가 평생 영화만 만들지 못했다는 건 의외다. 제러미 번스타인이 1966년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큐브릭은 20대 초반 맨해튼의 공원에서 '내기 체스'로 생계를 유지했다. 영화 연출 5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을 때다. 그는 공원에서 종일 내기 체스를 두며 하루 3달러를 벌어 끼니를 때웠다.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을 그리며….

큐브릭은 어떤 제작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작품 '영광의 길'로 성공을 거둔다. 차기작 '스파르타쿠스'를 연출할 때 그는 시간과 예산을 초과했다. 제작사는 그가 만든 작품의 상업성을 의심했다. 이 작품 이후 그는 제작사의 간섭이나 견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했던 미국 소설가 테리 서던은 큐브릭을 "신품종 감독"이라고 했다. 그건 바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통제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운 좋은 입장에 있는 감독'이란 뜻이다. 1970년대 이런 권력을 가진 감독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지옥의 묵시록')와 큐브릭 둘뿐이었다.

촬영장에서 그는 미치광이나 괴짜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배우들에게 한 컷을 수십 번, 100번 이상씩 연기하게 했다. 반복하다 지친 배우가 광기와 신경질 섞인 연기를 보일 때야 그는 만족했다. '스파르타쿠스'의 주연 커크 더글러스는 큐브릭을 가리켜 '재능 있는 나쁜 놈(talented shit)'이라고 했다. 다른 영화감독들은 신경도 안 쓰는 곳까지 병적으로 집착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한국판 비디오로 발매됐을 때 그는 표지를 네 번이나 바꾸도록 했다. 터키판 비디오는 12번이나 바꿔야 했다는 이야기로 한국 비디오 회사는 위안을 삼았다.

◇평소에도 헬멧을 쓰고 다닌 괴짜?

인터뷰 때 큐브릭의 대답은 한결같이 길고 단호하다. 마치 자기 자식이 어디 가서 욕먹을까봐 기를 쓰고 변호하는 부모 같다. 그의 영화들은 개봉 직후에 언제나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었고, 개봉 후 시간이 지나서야 걸작(傑作)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처음에 받은 리뷰들은 형편없는 건 고사하고 모욕적이었다"고 비난했다. 기자들은 그에게 온갖 소문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운전기사에게 시속 48㎞ 이상 달리지 못하게 하고,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미식축구 헬멧을 쓴다는 게 그 예다. 그는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한다'는 소문 빼고는 다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당대의 영화 기자들은 인터뷰 기사에 큐브릭에 대한 달콤한 찬사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가장 적확한 질문을 함으로써 그의 재능과 열정이 드러나게 만든다. 책에 실린 마지막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감독님은 강렬한 느낌을 창출하지만, 우리한테 쉬운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큐브릭은 평소와는 다르게 짧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쉬운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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