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렴(65·충북 제천시·목사)씨는 신부전증으로 지난 8년간 악몽 같은 투병 생활을 했다. 중증 당뇨병까지 있는 그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지난해 7월 결국 "신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기증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런 김씨를 위해 같은 도시에서 20년 넘게 목회 활동을 해온 친구 김성수(64·목사)씨가 나섰다. 덕분에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 날짜까지 받았다.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김용렴씨의 희망은 그러나 수술을 18일 앞둔 지난 11일 깨져버렸다. 장기 이식 수술 승인권을 갖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이하 이식센터)가 "두 사람의 친분 관계가 의심되니 수술을 승인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20년 지기인 두 사람은 같이 찍은 사진들, "두 분이 친구임을 보증한다"는 제천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서명이 담긴 보증서를 제출했다. 심지어 서로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적었던 방명록, 최근 6개월간 통화 내역까지 냈다. 하지만 이식센터 담당자는 "교단이 다르고 가족도 아니라 친분을 입증할 수 없다"며 끝내 수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연은 김성수씨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편지를 보내오면서 알려졌다. 김씨는 '친구를 위해 내 몸 한쪽을 떼주려던 진심이 매도당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썼다. 김씨는 "센터 쪽에서 동네 사람들한테 한 번만 물어보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은 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식관리센터 측 관계자는 "친밀도를 검증하는 일은 각 병원 사회복지사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서류와 사회복지사의 의견을 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할 뿐이며 타인 간 장기 이식을 전담하는 직원이 한 명밖에 없어 전국에 실사를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1999년 만들어진 장기이식법은 이식센터가 환자와 기증자의 관계를 심사한 뒤 수술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브로커를 통한 장기 매매가 사회문제가 되자 그걸 막자고 제정된 것이다. 가족 관계가 아닌 기증자와 환자는 법에 따라 '친밀한 관계와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입증할 마땅한 잣대가 없다 보니 '초·중·고를 같이 다닌 동창'이라거나 '바로 이웃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다'는 정도가 아니면 거의 승인이 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장은 "장기 기증을 가장해 불법으로 장기를 매매하는 건 당연히 막아야겠지만 친구나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숭고한 뜻을 훼손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