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 단교 이후 최고위급 주한 타이베이대표로 격상 파견, 왜?

입력 2014.07.17 13:35 | 수정 2014.07.17 13:43

신임 주한 타이베이(臺北)대표부 대표로 중화민국(대만) 외교부 차관급이 부임했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는 주한 대만(臺灣)대사관에 해당한다. 1992년 한·중 수교에 이은 한·대만 단교 이후 한국과 대만의 영사업무 등 외교업무를 처리해온 외교공관이다. 중국 때문에 ‘중화민국’ ‘대만’이란 이름을 못 쓰는 대신 수도 ‘타이베이’의 이름을 대신 써왔다.

1992년 한·대만 단교 후 차관급 인사가 타이베이대표부 대표로 부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2년 단교 후 린준셴(林尊賢), 리중루(李宗儒), 리자이팡(李在方), 천융춰(陳永綽), 량잉빈(梁英斌) 등 5명의 대표는 국장이나 차관보급이었다.

신임 주한 타이베이 대표로 부임한 사람은 스딩(石定·61) 대만 외교부 정무차장.

정무차장은 외교부장의 뒤를 잇는 외교부 내 두 번째 고위직이다. 대만 외교부는 외교부장(장관) 바로 아래로 정무차장(차관급) 2명과 상무차장(사무차장), 주임비서를 두고 있다. 스딩 신임 대표 내정자는 현재 대만 외교부 정무차장(차관급)과 함께 외교·국제사무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1992년 단교 후 한국에 부임하는 가장 최고위급 외교관이다. 7월 15일쯤 올 것”이라고 했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의 ‘차관급 격상’은 지난 7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둔 시점에 단행돼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1992년 한·중 수교 후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북한을 거치지 않고 한국을 먼저 찾는 경우다.

이처럼 한·중 밀월과 최근 북·일 교섭 등 동북아 외교지형이 흔들리는 와중에 대만 외교부의 고위인사가 한국에 부임하는 것이다. 대만으로서는 “대만 마잉주(馬英九) 정부 역시 대륙 시진핑 못지않게 한국을 중시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셈이다.

대만 정부는 2012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표시해 왔다. 박 대통령이 ‘야인(野人)’으로 있을 당시 대만 타이베이의 문화대(文化大)에서 명예박사를 받고, 국회의원 때 최고산업전략과정을 수료하는 등 대만과의 인연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박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과 문화대 장징후(張鏡湖) 이사장을 위시한 축하사절들도 대거 방한했다. 대만 측 축하사절은 1992년 한·대만 단교 이후 역대 최다였다. 당시 청와대 외빈 만찬 직후 기자와 만난 장징후 문화대 이사장은 “민의를 중시하며 10년간 준비한 결과”라며 “고난을 이겨낸 박근혜 학우(學友)가 대통령이 돼 기쁘다”고 말했다.

1992년 한국과 대만의 단교 전만 해도 주한 대만대사(타이베이대표의 전신)는 고위 군(軍)장성과 외교관의 몫이었다. 한국은 항일전쟁과 6·25전쟁의 ‘혈맹(血盟)’이었고, 대만의 몇 안 되는 수교국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의 개인적 친분도 작용했다. 또 한국과 수교 중인 국가들을 상대로 정보전을 벌일 수 있어 주한 대만대사관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컸다.

이에 1992년 한·대만 간 단교 전만 해도 대만 대사는 대만 외교부의 정무차장(차관급)급이 왔다가, 대만 외교부장으로 영전해 가는 코스였다. 1992년 한·대만 간 단교 때 마지막 주한 대만대사를 지낸 진수지(金樹基) 전 대사도 정무차장(차관급)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1992년 한·대만 간 전격 단교와 함께 주한 대만대사(타이베이대표의 전신) 자리는 과거에 비해 위상이 격하됐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의 관계자에 따르면, 스딩 신임 대표는 1992년 한·대만 단교 때 현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에 있던 대만대사관 철수를 직접 서울에서 지켜봤다. 한·대만 단교 1년 전인 1991년 주한 대만대사관 일등비서(서기관)로 파견돼 단교 후에도 서울에 잔류하며 주한 타이베이대표처(處) 일등비서로 1994년까지 근무했다. 한반도 상황에 정통한 외교관이란 평가다.

스딩 신임 대표는 대만 집권 국민당 간부양성소의 후신인 대만정치대(政治大)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외교학 석사를 받았다. 외교부에 입부해 대만 외교의 중핵인 중남미과를 시작으로, 아시아태평양 사장(국장) 등을 지내고, 뉴질랜드 대표와 벨리즈(중남미) 대사를 거쳤다. 지난해 2월 대만 외교부의 넘버 2인 정무차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스딩 신임 대표는 올 초까지만 해도 주영(駐英) 타이베이대표부 대표 등으로 거론됐다. “주영 대표는 미국, 일본과 함께 대만 총통부의 직접 재가가 필요한 자리”란 것이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결국 막판에 현 량잉빈 대표의 후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량잉빈 현 대표는 4년 임기를 마무리 짓고 7월 8일 타이베이로 귀임했다. 량잉빈 전 대표는 재임 중 1992년 한국과 대만 간 단교로 끊어졌던 서울 김포공항~타이베이 쑹산(松山)공항의 노선 복항을 20년 만에 성사시켰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대표의 차관급 격상은 중국 측에도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은 줄곧 자국 외교부의 부국장급, 국장급 인사를 주한 중국대사로 파견해 왔다. 지난 2월 새로 부임한 현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으로 부임 직전 외교부 섭외(대외)안전사무사 사장(司長·국장)급에 불과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주중 한국대사를 차례로 지낸 장팅옌(張庭延), 우다웨이(武大偉), 리빈(李濱), 닝푸쿠이(寧賦魁), 청융화(程永華), 장신썬(張?森)도 부국장, 국장급에 머물렀다. 심지어 리빈 전 대사는 한국 근무를 끝내고 외교부 아주사(국) 부사장(국장)으로 귀임한 뒤, 국가기밀을 한국에 누설했다는 ‘특무죄’로 중국국가안전부(국안)에 체포돼 당적을 박탈당하고 7년간 형을 살았다.

반대로 주중 한국대사는 1992년 한·중 수교 후 외무부(현 외교부) 차관 출신 고(故) 노재원 초대 주중 대사를 필두로 대개 장차관급 이상에서 발탁됐다. 심지어 거물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최측근이 주중 대사를 맡았다. 현 권영세 주중 대사는 3선 국회의원이고, 지난 이명박 정부 때는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류우익씨를 주중 대사로 기용했다.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주재 중국대사에 비해서도 격이 더 떨어졌다. 현 북한 주재 중국대사인 류홍차이(劉洪才)는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지낸 차관급이다. ‘(공산)당이 정부를 영도한다(以黨領政)’는 중국의 조직원리상 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외교부 부부장보다도 더 높다. 사실상 대중 불평등 외교를 이어온 셈.

주한 타이베이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정무차장을 신임 타이베이대표부 대표로 보내는 것은 그만큼 한국을 중시한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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