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대담하고 역사적이며 획기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의 발언은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수정주의 태도가 계속되고 있고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고노(河野) 담화' 무력화 시도,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 일본의 우경화(右傾化)를 비판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헤이글 장관은 "미국 정부는 아베 총리와 내각 결정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환영했다. 일본의 팽창주의와 우경화에 대한 동북아 주변국의 반발을 알면서도,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대리인'으로 일본을 확실하게 선택한 셈이다.

美·日국방 화기애애 - 척 헤이글(왼쪽) 미국 국방장관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이 11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활짝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미국이 막대한 재정 적자의 여파로 군사 예산을 자동 삭감하는 형편에 일본의 든든한 경제력과 역할 확대는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동북아에서 군사·경제·외교적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에 미국을 대신해 힘을 써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결과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결정과 미국의 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헤이글 장관의 발언은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에 대해 한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백악관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미·일의 3각 동맹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그 바탕 위에서 동북아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최근 동북아 상황이 '한·중 대(對) 미·일' 구도로 변화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자, 미국은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도 이런 미국의 의도에 맞춰 논리를 개발했다.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한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미군 보호를 예로 들면서 집단적 자위권 추진 배경을 설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현행 헌법 9조에서는 자위권 사용이 일본이 공격받았을 때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이 무장 공격을 받고, 자위대가 옆에 있어도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근처 공해에서 작전 중인 미국 군함을 보호하고, 괌이나 하와이, 미국 본토로 향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집단적 자위권 추진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의 기류도 긍정적이다. 오노데라 장관이 최근 한 세미나에서 미국과의 공조를 역설하고 첨단 무기 구입 가능성을 언급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미국 내 상당수 안보 전문가도 "일본 같은 대국이 아시아의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대응해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견제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한 미국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당장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이 미국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 영유권 갈등을 빚는 중국과 대화를 시도하겠지만, 중국이 패권 확장 행보를 계속할 경우에는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내 우경화 흐름을 감안하면, 군사적으로 힘을 불린 일본은 오히려 '위험국가'가 될 소지도 있다. 한국이 일본과 외교적 거리를 취할 경우, 한·미·일 3각 동맹의 균열로 이어져 미국의 패권 강화 의도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