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1만7000명 치료받은 희망진료센터… 의료 소외계층 어루만지다

입력 2014.07.08 03:03 | 수정 2014.07.08 16:52

"Miracle(기적입니다)."

품에 안긴 세쌍둥이를 감격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나이지리아 여성 데파트(가명·35)씨는 지난 한 달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6년간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는 그녀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은 건 지난 2008년. 중고차·옷 등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내 실패했고, 잦은 음주와 여자 문제로 속썩이던 전 남편과도 4년 만에 이혼했다. 단기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된 그녀는 나이지리아에 있는 4살배기 딸의 양육비를 송금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다 공장에서 일하던 현재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게 된 것. 결혼 후 세쌍둥이를 임신했단 소식에 데파트씨는 "막상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부부가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고, 35세 이상 고위험 산모라 산전검사부터 출산까지 병원비 부담이 컸기 때문. 남편 월급 170만원으로는 월세, 생활비, 양육비를 감당하기도 부족했다. 전전긍긍하던 데파트씨의 마지막 희망은 희망진료센터였다.

2012년 6월, 대한적십자사와 서울대학교병원,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함께 서울적십자병원에 마련한‘희망진료센터’의 지원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담당 의사와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2012년 6월, 대한적십자사와 서울대학교병원,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함께 서울적십자병원에 마련한‘희망진료센터’의 지원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담당 의사와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대한적십자사 제공
희망진료센터는 2012년 6월, 대한적십자사와 서울대학교병원,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함께 서울적십자병원 내에 마련한 의료센터다. 데파트씨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 북한 이탈 주민, 난민 등 의료 소외계층이 그 대상이다. 지금까지 1만7000여명이 희망진료센터를 통해 수술 및 치료를 받았고, 총 11억원이 지원됐다. 정부·민간 차원의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는 새로운 시도였다. 최윤지 대한적십자사 희망진료센터 의료사회복지사는 "복지부도 긴급 의료 지원사업을 통해 불법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근로자를 돕고 있지만, 주로 입원비만 지원하고 막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비급여항목인 수술비나 기타 외래비는 고스란히 본인 부담"이라면서 "게다가 지원을 받으려면 근로확인서·사업자등록증 등 요구되는 서류가 많아 불법고용한 사업주들이 관련 서류를 떼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희망진료센터는 입원비, 수술비, 외래비는 물론 MRI 등 비급여항목까지 각자의 경제 사정에 따라 본인부담액의 50~100%까지 지원한다. 데파트씨 역시 산전 검사·진료·제왕절개수술 등 400만원 상당의 의료비를 지원받았고, 출산 이후에도 세쌍둥이의 검사 및 진료를 무료로 받고 있다. 김민선 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공공의료보건사업단)는 "세쌍둥이 모두 2㎏ 내외로 저체중인 데다가 셋째는 왼쪽 귀에 이상이 있어서, 관련 검사와 치료 비용으로 최대 2000만원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꾸준히 진료받은 덕분에 지금은 세쌍둥이 모두 건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이 삼자 간 협력 덕분이었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설립 이후 축적된 적십자병원 6곳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서울대병원은 내과·산부인과·가정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 5명을 희망진료센터 전담 인력으로 배치, 이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의료비뿐만 아니라 간호사·사회복지사의 인건비, 운영비를 포함해 2년간 약 13억원을 지원했다. 김일태 대한적십자사 병원정책팀 담당자는 "서울대병원 교수진의 진료뿐만 아니라 적십자병원에 없는 산과(출산), 암환자의 방사선 치료, 큰 수술을 서울대병원에서 신속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상담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이 많아, 희망진료센터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 상주, 통영, 거창 등 전국 4개의 적십자병원에 희망진료센터가 확대, 운영되고 있다. 각 희망진료센터에서는 취약계층 산모에게 육아용품을 지원하는 '해피맘 프로젝트', 다문화 가족을 위한 건강교실 및 힐링콘서트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병원문을 나서던 데파트씨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지난달 저처럼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임신한 외국인 여성에게 희망진료센터를 소개해줬어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뒤 어찌나 감사 인사를 전하던지…. 저희는 이렇게 희망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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