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존심이 이라크에서 무너지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군을 상징하던 전투 차량 험비(Humvee)가 수니파 반군(叛軍)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측에 넘어가 '반란'의 상징이 되고 있다. 험비의 민간 모델인 '허머(Hummer)'는 한때 월가의 잘나가는 증권맨들이 '부와 힘'의 상징처럼 타고 다녔던 차량이다.

1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북부 250㎞ 떨어진 정유 지대의 외곽 검문소에서 이라크 반군 ISIS 조직원들이 정부군에게서 탈취한 험비 차량 앞에 서 있다.

미군의 상징이 반군의 '전리품'으로 넘어간 것은, 이라크 정부군의 무능 때문이다. 미국은 2011년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반군의 거센 공세가 이어지자 '고기동 다목적 전투 차량(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인 험비 수백대를 이라크군에 제공했다. 그런데 최근 ISIS가 기세를 올리면서 정부군이 장비를 내팽개치고 도망가자 반군들이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포스트는 ISIS가 험비를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 공격 때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라크·시리아 국경 일대를 ISIS가 장악하면서 시리아 쪽으로도 험비가 넘어갔다.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무기… 이슬람 수니파 반군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조직원들이 22일 이라크 북부 모술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나눠주고 있다. ISIS가 최근 서부 주요 도시인 카임·루트바 등을 점령했으며, 요르단과 시리아 접경에 있는 검문소 2곳을 추가 장악하면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SNS 상에서는 조롱거리가 돼버렸다. 험비 5~6대가 트럭에 실려 시리아로 운반되는 사진이 올라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나이지리아 이슬람 반군 단체 보코 하람에 납치된 여학생들을 돌려달라며 손 팻말을 든 사진을 "우리 험비를 돌려 달라"고 패러디하는 일도 일어났다.

험비는 2차대전 때 사용하던 지프를 대신할 미군의 차세대 전술 차량으로 1980년대 개발됐다. 주한 미군의 주력 전투 차량이기도 하다. 군용 험비를 본뜬 민간 모델 허머는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 힘든 '기름 먹는 하마'여서 오히려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탱크 같은 듬직함 때문에 '남성들의 로망'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환경친화적 차량을 선호하면서 2010년 단종됐다. 허머를 판매하던 GM은 중국 텅중(騰中)중공업에 브랜드를 넘기려 했으나, 중국 당국마저 공해를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