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3~4일로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국빈 방한은 한·중 관계뿐만 아니라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를 좌우하는 표지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양국 정부는 시 주석 취임 후 처음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의 의제를 면밀하게 조율하고 그 결과를 어떤 형태로 발표할지 협의하고 있다.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양자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 핵과 통일 문제, 양국 관계 발전 방향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의 성패는 한·중 양국 정상이 '미래 한반도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가기로 합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한·미·중 간의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한 협의가 활발히 이뤄졌던 만큼, 시 주석이 북한의 핵 동결 등 비핵화의 진전을 담보할 만한 카드를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한·중 양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작년 6월 박 대통령의 방중 때 모든 분야에서 이 관계를 내실화하자는 내용의 '한·중 미래비전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우리 정부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중 관계를 가져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취임 후 첫 방한'이란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이 작년의 공동선언을 뛰어넘는 결과를 내려고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중국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과는 아시아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시 주석은 지난 5월 상하이에서 개최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정상회의'에서 "제3자를 겨냥한 군사 동맹 강화는 지역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며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으로선 북·중 관계가 소원한 틈에 북·일이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에 합의하며 다가서고 있고 남중국해에서 주변 국가들과 영토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최근 정세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중국이 이번 방한을 외교적 활로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적잖다. '한·중의 대일 역사 공조'를 강조하면서 '한·중 관계의 실질적 격상'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작년 한·중 미래비전 공동선언에서 강조한 '전략적 소통 강화'에서 더 나아가 '정치·안보 분야 전략적 파트너'로서 새로운 채널을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난항을 겪고 있는 한·중 FTA 등 경제 분야 협력에 대해 시 주석이 '통 큰 선물'을 줄지도 주목된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유럽 순방 때 200여명의 경제사절단을 대동해서 거액의 계약을 수십 건씩 체결했다. 중국이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주한 미군의 사드(THAAD) 배치, 탈북자, 해양 경계 획정, 어업 분쟁처럼 껄끄러운 주제는 비교적 적은 비중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 차관보는 18일(현지 시각)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이정표"라면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필요한 협력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가 시 주석의 한국 방문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워싱턴의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한 '한·미 동맹의 위협 요인 평가' 세미나에 참석한 러셀 차관보는 "미국은 한국이 주변국들과 강건한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