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노 담화 알맹이 빼려는 아베, 이럴 바엔 담화 취소하라

조선일보
입력 2014.06.17 03:00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이 그동안 진행해온 '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이번 주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1993년 18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처음으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다. 고노 담화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 및 식민 지배 전반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와 더불어 지난 20여 년간 한·일 관계를 지탱해온 양대 축(軸)이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2012년 12월 출범 이후 틈만 나면 고노 담화의 근본 취지를 뒤집으려고 해왔다. 급기야 올 들어 이 담화가 나오기까지의 전후 상황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언론들은 "고노 담화가 한·일 간 정치 협상의 산물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고노 담화 중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라는 문구에서 '요청'이란 표현은 원래는 '의향'이라고 돼 있었는데 한국 측이 '지시'로 바꿔달라고 요구해 '요청'으로 절충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인 위안부 16명의 증언을 청취한 것도 한국 측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고노 담화가 객관적·역사적 조사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게 아니라 한·일 간 정치 협상 또는 한국 측의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당시 자료 조사에 협조는 했지만 타협이나 문안 협상 같은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설령 일본 측 주장대로 한·일 간에 실무 협의가 일부 있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외교에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내용까지 끄집어내 가며 고노 담화의 알맹이를 빼내려는 아베 내각의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아베 내각은 이런 식으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번복하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세계 여론의 공분(公憤)을 불러온 대표적 사안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금의 군색한 처지를 모면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중재로 조금씩 대화의 문을 열어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아베 내각이 막후 외교 교섭 내용까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일방적 내용을 공개할 경우 사실상 한·일 외교의 문을 닫아걸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일본 스스로 한·일 간에 외교가 들어설 입지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노 담화 검증 결과가 한·일 외교를 되돌리기 힘든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마저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아베 내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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