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협정 반세기 역사를 다시 만나다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4.06.16 02:59

    '해위 윤보선과 한·일 협정' 등 학술대회 잇달아 열려

    박정희(왼쪽), 윤보선.
    박정희(왼쪽), 윤보선.
    이승만 대통령 때인 1951년 10월 20일, 광복 후 처음으로 한·일 회담이 열렸다. 양유찬(梁裕燦) 한국 수석대표가 일제 식민 지배를 비판하며 "이제는 화해합시다"고 하자, 이구치 사다오(井口貞夫) 일본 수석대표는 "도대체 무엇을 화해하자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원천적으로 불법 무효라고 인식한 반면, 일본 정부는 합법적 통치라고 여긴 데서 이 같은 대화가 나온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이를 두고 "한·일 회담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파란과 우여곡절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했다. 한·일 협정은 이후 14년간 1500회 넘는 회의를 거쳐 1965년 6월 22일 조인됐다.

    내년 협정 체결 50주년에 앞서 한·일 협정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달아 열린다. 17일에는 해위(海葦)학술연구원·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해위 윤보선과 한·일 협정' 학술회의가 열린다. 이원덕 교수는 '박정희 정부의 한·일 수교 추진의 배경과 목적'이란 논문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일본과 국교 수립을 통해 경제개발 자금을 도입하는 것을 우선적 국익으로 판단했으며 이런 전략적 선택은 고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도 "그러나 과거사 청산 과제를 소홀하게 취급해 오늘날 한·일 관계를 짓누르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김명구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상임연구원은 '해위 윤보선과 한·일 협정 반대운동' 논문에서 "윤보선은 일본이 가해자로서 식민지 책임의식이 없는데도 박정희 정권이 수교 협정에 임해 국격(國格)을 훼손했다고 인식하면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고 말한다.

    북아역사재단은 20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한·일 협정 50년사의 재조명'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아리미쓰 켄 일본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 다카기 요시타카 변호사, 오타 오사무 도시샤대학 교수, 캐비타 모우디 영국 변호사, 장박진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 등 국내외 학자가 '일제 식민 지배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법정책적 과제'를 주제로 발표·토론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