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책값 1만3800원의 비밀

입력 2014.06.13 13:42 | 수정 2014.06.13 13:46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외국소설 코너에 쌓인 책 가격을 확인해 봤다. 1만3800원, 1만5000원, 1만4800원, 1만2000원. 매대에 놓여 있는 35종의 책 중 정가 1만3800원짜리 책은 모두 11종. 12종의 책이 1만5000원이었고, 1만3800원인 책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대학생 유현미(22)씨는 “1만4800원은 1만5000원보다 싸게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 같지만, 지금 보니 1만3800원은 굉장히 애매한 가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의 말처럼 애매하기 그지없는 1만3800원. 왜 출판사는 1만3800원짜리 책을 내놓는 것일까. 기자가 만나본 출판업계 사람들은 책값 책정 과정의 비밀을 정확히 밝히는 것을 꺼렸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출판사 마케팅 과장의 말이다. “우리나라 책 가격을 의외로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한 사람이 과반수가 넘었어요.” 이 출판사에서는 작년에 리서치 회사에 의뢰해 책값과 소비자 심리에 대한 여론 조사를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난 2009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책값이 일반 물가에 비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5.4%로 거의 과반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가격을 비교해 보면, 양장본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책값이 미국이나 일본, 영국에 비해 오히려 싸다. 2011년 미국의 평균 책값은 페이퍼백스(문고판)의 경우 12.68달러(약 1만3000원), 하드커버는 14.4달러(약 1만5000원)이다. 작년 우리나라 평균 책값은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고영수)의 조사 결과 1만4678원이다.

1만3800원이라는 애매한 책값은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반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한 온라인 서점 마케팅 담당자 조씨는 “책 읽는 사람은 매우 적고, 그나마 읽는 사람도 책이 비싸다고 생각하니, 최대한 싸게 보이도록 하는 게 서점 입장에서는 관건”이라며 “1만3800원이라는 책값의 가장 큰 비밀은 이런 마케팅 전략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단수 가격’이라는 가격 정책이 있다. 반올림된 숫자보다 아주 조금 낮은 숫자로 매겨진 가격을 ‘단수 가격’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더 싼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00원짜리 물건보다 4900원짜리 물건이 더 싸게 느껴지는 현상이다.

한때 90원, 900원, 9000원으로 끝나는 가격이 유통 업계에서 유행했던 이유다. 온라인 서점 마케팅 담당자 조씨는 “이제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900원이라는 가격에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4900원짜리 책을 5000원짜리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출판 업계에서도 그렇고 온라인 서점에서도 그렇고 조금 더 싸게 보이려는 가격을 많이 선택해요.”

1만3800원은 1만5000원보다는 적지만, 단수 가격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출판사 경영 20년인 한 출판사 대표는 “2만원보다 1만8000원, 3만원보다 2만7000원을 많이 선택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책값에 9가 들어가는 경우는 잘 없다”고 했다. 그는 “책값이 노골적으로 가격 마케팅 전략을 따르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지 않으려는 게 업계의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1만3800원짜리 책은 출판사에 적절한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1만3800원짜리 책을 낸 한 출판사 대표는 “우리나라 책 가격은 단지 공개된 자료일 뿐, 할인율이 제멋대로라 실제 벌어들이는 돈은 더 적다”면서 “정가대로 팔더라도 수익을 낼까 말까인데 할인율이 높으니 늘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소장 박익순)가 발표한 ‘2013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주요 출판사 81개사와 7개 대형 서점의 80%가 넘는 곳이 2012년에 비해 영업 이익과 매출액이 줄어들었다.

연구소는 ‘과도한 할인 경쟁과 도서정가제 파괴’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도서의 정가에서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한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지난 4월 29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 내로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책은 할인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독자들의 인식이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의 걸림돌로 꼽힌다.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은 “우선 출판계가 가격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싼 책보다 좋은 책을 고르려는 독서 인구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통 책값은 제작비, 인세, 유통비,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해 결정된다. 여기에 출판사의 마진을 더해 정가가 책정된다. 출판사는 서점에 정가의 50~75% 수준에서 책을 넘긴다. 온라인 서점은 50~60%, 오프라인 서점은 60~75% 정도다. 웬만한 이름 있는 작가들의 인세도 책값의 20%가 넘기 어렵기 때문에 책값에서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은 결국 서점의 이익으로 떼어주는 부분이다.

그걸 감안해서 책값을 정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작가가 받는 인세는 정가의 10% 정도, 인쇄하는 데 드는 종이값과 디자인비 등은 20%, 유통비는 통상 10% 이내, 마케팅 비용은 10% 정도다. 출판사들은 “정가의 50~60%로 온라인 서점에 책을 유통할 경우 출판사에서 남는 돈은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온라인 서점의 무료배송, 높은 할인율을 ‘혜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책값은 이를 충분히 감안해 결정되는 것이다.

1990년대 문을 열어 이제는 중견 출판사 소리를 듣는 한 출판사의 마케팅 과장 이모씨의 말에 따르면 요즘 출판사들은 책을 통해 많은 이익이 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씨는 “초판 발행 부수가 겨우겨우 다 팔렸을 경우 최소한의 수익만 남길 것으로 기대하고 계산해 책값을 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초판 발행 부수는 2005부다. 여기에는 학습 참고서, 종교 분야 등 꾸준히 수요가 있는 분야까지 합해져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 인문서 등 비인기 분야는 초판으로 1500~2000부를 찍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씨는 “어떤 분야의 책을 내느냐에 따라 책값도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서점에 가서 보면 인문·사회·예술 서적 값이 조금 더 비싸고 소설·에세이 등 문학 책값이 쌉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문·사회 분야 서적의 경우 유통되는 기간이 짧은 반면, 소설·에세이 등 문학이나 청소년·아동 분야의 책은 꾸준히 수요가 있기 때문에 오래 팔리는 책들의 값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것이다. 이씨는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책값이 결정되는 데 책의 가치가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만약 독서 인구가 많아져서 출판 시장이 커진다면 책의 가치에 따라 책값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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