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人 소방서' 81곳… 5분 출동 골든타임 못 지킨다

조선일보
  • 엄보운 기자
    입력 2014.06.07 02:59

    [출동시간 서울 3분22초, 전남 7분7초, 경북 9분8초]

    혼자 장비 챙겨, 운전하고, 나홀로 불꺼
    서울 면적 4분의 1을 한명이 맡는 곳도
    2인 1조 원칙 위반… "재정 지원 절실"

    지난달 29일 오후 강원 삼척소방서 노곡119지역대의 출동 벨이 "드르르륵" 하고 울렸다. 김남현(31) 소방교가 상황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방화복을 챙겨 입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가정집 가스레인지에서 화재 발생. 혼자 사는 할머니가 건물 안에 갇혀 있다." 소방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은 김씨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신고자와 통화했다. 현행법상 차량 운전자는 차를 세워두고 통화해야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했다.

    현장에 도착한 김씨는 소방 호스의 한 끝을 소방차 펌프에 연결하고 다른 쪽 끝을 불이 난 집 앞에 갖다 둔 뒤, 다시 차로 돌아와 펌프 압력을 높였다. 아무도 붙잡지 않은 호스가 물로 팽팽히 부풀어 오르며 좌우로 요동쳤다. 김씨가 재빨리 달려가 물을 뿜으며 춤을 추고 있는 호스 끝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소방 경력 6년의 김씨는 "둘이 하면 30초 만에 할 일을 혼자선 그 3배가 걸린다"고 말했다.

    강원 삼척시 노곡면 일대 144㎢(서울시 면적의 약 4분의 1)의 재난을 책임지는 삼척소방서 노곡119지역대. 이곳은 소방관 3명이 12시간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 상황이 발생하면 소방관 한 명만 출동하는 ‘1인 소방서’다
    강원 삼척시 노곡면 일대 144㎢(서울시 면적의 약 4분의 1)의 재난을 책임지는 삼척소방서 노곡119지역대. 이곳은 소방관 3명이 12시간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 상황이 발생하면 소방관 한 명만 출동하는 ‘1인 소방서’다. /노곡119지역대 제공
    김씨가 물을 뿌리기 시작한 건 출동 벨이 울린 지 10분이 훌쩍 넘어서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은 크게 번져 집 전체를 태웠다. 소방관 3~4명이 출동했더라면 피해가 그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사고였다. 화재가 났을 때 초기에 불길을 잡아 대형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5분이다. 불이 나고 5분이 지나면 축적된 열 때문에 화염이 폭발적으로 번지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이 나타난다.

    노곡119지역대는 '1인 소방서'다. 김씨를 포함한 소방관 3명이 배치돼 있지만, 12시간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 화재나 응급 상황이 생기면 소방관 1명만 출동한다. 상황 보고, 화재 진압, 소방차 조작을 홀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1인 소방관이 책임져야 하는 삼척시 노곡면 일대 면적은 144㎢.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이다.

    1인 소방서 현황 그래프
    이같이 소방관 1명이 근무하는 1인 소방서가 전국에 81곳이나 된다. 대부분 인구 밀도는 낮고 관할 면적은 넓은 농촌·도서 지역들이다. 지난해 서울 지역 소방서의 평균 출동 시간은 3분 22초였다. 반면 1인 소방서 41곳이 있는 전남 소방본부의 경우 평균 출동 시간이 7분 7초였고, 강원 소방본부(21곳)는 7분 36초, 경북 소방본부(15곳)는 9분 8초였다. 이 지역 주민들은 안전에 관한 한 결과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소방관들은 "혼자선 아무리 용을 써봐도 현장에서 기본적인 구조·구난도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소방방재청의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려면 불길을 잡아야 한다"며 "하지만 혼자 출동해서는 불 끄면서 인명을 구조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 홀로 출동'은 소방 내규 위반이기도 하다. 소방 내규인 표준작전절차에선 화재 등 구난 현장에서 '2인 1조'를 최소 팀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1인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의 경우 구조가 당장 필요한 사람이나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불 끄는 건 포기하고 그들에게 달려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경우 불이 번지는 걸 막을 수 없어 추가 피해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소방관도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3월 경기도 고양시 한 화재 현장에서 1인 소방서 소속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식사119지역대 조동환 소방장은 홀로 화재 현장에 진입했다가 10m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동료 소방관들에 의해 발견됐지만,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동료 소방관들은 "2인 1조였다면 죽지 않았을 사고"라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 김찬오 안전공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지만 지역에 따라 구조·구난 서비스는 큰 질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이 책무를 떠넘기고 재원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아 이런 현상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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