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

입력 2014.06.05 14:32 | 수정 2014.06.05 14:36

'김광석 길'의 다양한 풍경들. 남녀노소 모두 골목길을 즐긴다.
'김광석 길'의 다양한 풍경들. 남녀노소 모두 골목길을 즐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온종일 김광석 노래만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그뿐인가.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김광석 얼굴 그림뿐이다. 아담한 체구에 귀염성 있는 얼굴, 그러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가객(歌客) 김광석. 노래를 듣다 가사가 궁금해지면 담벼락을 훑어본다. 어딘가에 노랫말 또한 적혀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 길’ 풍경이다. ‘김광석 길’의 정확한 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올해는 김광석(1964~1996)이 태어난 지 50년. 서른셋에 죽었으니 누가 봐도 요절이다. 그래서일까 평일에는 매일 수백 명, 주말에는 1만 명 가까운 인파가 골목길 ‘김광석 길’을 찾는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광역시 남구 대봉동에서 났다. 남구 대봉동은 이후 행정구역이 중구 대봉동으로 바뀌었다. 대봉동은 방천시장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김광석 길’을 설명하려면 먼저 신천과 방천시장을 설명해야 한다. 신천은 대구광역시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하천 둑길은 현재 신천대로. 자동차들이 쌩쌩 달린다. 신천대로 아래쪽, 즉 둑길 아래쪽에 전통 재래시장인 방천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방천시장과 둑길 사이의 폭 3m 남짓한 골목길이 350m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김광석 길’이다. 방천시장 정문 앞길, 즉 달구벌대로에서 들어가는 게 ‘김광석 길’을 탐방하는 정코스다.

‘김광석 길’이 탄생한 것은 2009년. 처음부터 ‘김광석 길’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방천시장 문전성시(文傳成市) 프로젝트’가 김광석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란 세력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고사성어. 그런데 음만 같고 한자가 다른 ‘文傳成市’는 무슨 뜻인가. 이것은 문화로 전통시장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로 이정호 경북대 건축과 교수가 시작한 문화예술운동이다.

'김광석 길'에는 생전에 그를 본 적이 없는 20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도시 도심 재래시장의 퇴락은 대구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인천, 광주 등도 똑같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전통시장 방천시장이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 마켓의 출현으로 존립 위기에 놓이게 되자 방법을 모색했다. 여기에 대구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그런데 방천시장의 경우 다른 전통시장과 다른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둑길 담벼락이다. 해가 지면 인적이 끊겨 위험한 지역으로 불리기 일쑤였다. 이 담벼락에 무언가 의미있는 그림을 그려 넣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방천시장의 분위기가 바뀐다고 생각했다. 골목길 벽화는 동피랑 벽화마을(통영), 감천동 문화마을(부산)을 비롯해 여러 자치단체에서 시도해 성공한 바 있었다.

김광석 길에서 아트카페를 운영하는 조각가 손영복씨는 2010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예술감독을 맡았다. 손영복 작가의 말이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었죠. 벽화를 그려 넣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데 단순벽화는 훼손이 있을 수 있어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 출신 명사를 그려 넣는 것으로 개념을 잡고 인물을 찾다가 옆동네에서 태어난 김광석을 생각해 낸 겁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광석은 방천시장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대봉동에서 태어났고 유년기의 대부분은 범어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갔다. 김광석의 입장에서 보면 대구는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김광석을 주제로 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었던 후미진 골목길은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노래와 인생을 입히면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얻어 ‘김광석 길’로 태어났다. 이 길에서는 조각, 만화, 그림, 일러스트 등 거의 모든 시각예술이 김광석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표현하는 데 동원되었다.

'김광석 길' 입구의 동상. 조각가 손영복씨의 작품이다.
2010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참여한 작가는 곽운호(미술교사), 권기철(화가), 권수정(일러스터), 권혁규(영상설치작가), 김종희(화가), 김환수(그래피티작가), 김태강(디자이너), 류미숙(작가), 박재근(사진작가), 박현미(화가), 손영복(조각가), 송주형(조각가), 신혜영(작가), 오은정(화가), 윤광웅(화가), 윤동희(영상설치작가), 이슬기(미술대학생), 이우열(금속공예가), 이인석(디자이너), 임종진(사진작가), 장병언(화가), 정세용(조각가), 지정현(화가), 천명기(만화가), 최원석(화가), 최주이(그래피티작가), 하원식(조각가).

그럼 지금부터 골목길 초입에 있는 기타 치는 김광석 조각상을 본 뒤 ‘김광석 길’로 들어가 본다. 김광석 동상은 초입과 골목길 중간쯤에 각각 한 개씩 설치했다. 조각가 손영복씨의 작품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담벼락에는 대형 만화가 그려져 있는 게 보인다. 만화가 천명기씨가 그린 방천시장의 역사다. 10분만 서서 봐도 방천시장의 역사가 한눈에 그려진다. 그 다음은 이정호 교수가 주도한 ‘방천시장 문전성시’가 어떤 취지로 시작되었는지를 알리는 안내문이다.

350m의 담벼락은 김광석과 관련된 모든 것의 전시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김광석 전시장이다. 화가의 그림, 삽화가의 일러스트, 시인의 시, 조각가의 동상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게 있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이들의 낙서가 더해져 김광석 전시장을 완성한다. 물론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노래들의 노랫말도 적혀 있다. 김광석이 남긴 글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림, 이야기등을 통해서 이 세상에 없는 가수 김광석과 대화를 나눈다.

김광석은 서른세 살에 이승과 이별했다. 담벼락에는 김광석이 유작으로 남긴 글 ‘인생 이야기’ 중의 일부를 옮겨놓았다.

“7년 뒤, 7년 뒤에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 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놓았어요. 이런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상당히 걱정하시데요. ‘다리가 닿겠니?’ 그거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타고 가다가 괜찮은 유럽 아가씨 있으면 뒤에 태우고~. 머리 빡빡 깎고. 금물 이렇게 들여가지고. 가죽바지 입고, 체인 막 감고…. 나이 40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로맨스….”

화가는 김광석이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으로 실현시켰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있는 김광석은 기타를 둘러멘 채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화가 이슬기씨. 이씨는 2010년 당시에는 경북대 미대 재학생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을 주문한 사람은 예술감독 손영복 조각가. 이슬기씨는 위치를 선정했다.

시인 정훈교의 시 ‘벽화에 세들어 사는 남자’도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는 작품 중의 하나다.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거리/ 사람들이 흘리고 간 지문을 지우며 비가 온다/ 나른한 오후에 나무가 된/ 사내는 가을을 지나 나뭇잎 다 떠나보내고/ 어느 봄 꽃이 되어/ 아파트 열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다// 서른 즈음의 휴식도/ 잠깐 동안의 불륜이거나/ 짧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다.…’

방천시장 ‘김광석 길’을 찾는 사람들은 주류가 20~30대. 그러나 장년층도 간간이 섞여 있다. ‘김광석 길’이 워낙 알려져서 외지인들이 더 많다. 골목을 구경하는 두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서른세 살인 두 여성은 한 사람은 대구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서울 종로에서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온 A씨는 “국립대구미술관에서 라이프 사진전을 보고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A씨는 “말로만 듣다가 처음 와보는데 제주도의 이중섭 거리처럼 아기자기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김광석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 A씨는 “아버지께서 TV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김광석을 보시고 눈물 흘리시는 것을 본 뒤로 김광석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대구에서 온 B씨는 “열아홉 살 때 우연히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듣게 되었는데, 가사가 너무 좋아 그때부터 김광석 팬이 되었다”고 했다.

'김광석 길' 담벼락에는 '이등병의 편지'를 비롯한 히트곡들의 가사가 적혀있다.
대낮에 김광석 길에 가면 못 박는 소리, 톱질하는 소리 등이 심심찮게 들린다. 공방이나 카페용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소리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곳에 카페, 가게 등을 차리려는 소자본이 밀려들고 있다는 증거다. ‘김광석 길’에서 인기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로라방앗간’이다. 1983년부터 배소임씨가 운영하던 시장 방앗간을 지난 3월 작은 카페로 만들었다. 로라방앗간 안에는 배소임씨가 쓰던 방앗간 형태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면서 튀김, 떡볶이, 납작만두 등을 판다. 로라방앗간은 별도의 홍보책자를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한다. 김광석 연보, 앨범 이미지, 로라 추천곡 등을 실었다. 로라방앗간 추천곡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30대 초반의 여성들 말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여러 층을 아우른다. ‘이등병의 편지’ ‘광야에서’ ‘서른 즈음에’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그는 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감정을 노래했다.

‘김광석 길’은 불과 5~6년 만에 대구 최고의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덩달아 방천시장도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대자본이 골목을 침탈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장 입구에 우악스럽게 들어선 스테이크 전문점 빕스가 대표적이다. 빕스는 방천시장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김광석 길’이 성공한 이유는 왜 김광석이 여전히 애창되는지가 설명해준다. 그가 우리들과 작별한 지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말이다. ‘방천시장 문전성시’ 총감독 이정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김광석의 음악에 자신을 투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어디엔가 있을 사랑을 기다리며, 때로는 너무 아픈 사랑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마음을 들었다. 누군가는 입영영장을 받고서, 또 누군가는 서른이 되어서야 그의 음악을 진정 느꼈다. 쉽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김광석의 음악이 영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멀리 가버린 그 사람이 그토록 그리운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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