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이 29일 납치 피해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합의한 것은 두 나라가 직면한 동북아에서의 고립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처럼 보였던 북한과 일본의 갑작스러운 접근은 북핵(北核)을 둘러싼 동북아의 견제 구도를 흔들 수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미·중 3국에서는 일제히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국의 반응

우리 정부는 함께 북한을 압박해야 할 일본이 돌연 한·미·일 3각 공조에서 이탈한 상황을 곤혹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북한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벗어나 숨 쉴 공간을 내주고, 6자회담 당사국 간 분열만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국이 미·일은 물론 중국까지 설득해 북한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틈을 줌으로써 안보 협력에 엇박자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일이 단결해서 중국이 북한을 더 압박하도록 설득하자는 것이 그동안의 북핵 해법 아니냐"면서 "그런 일본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먼저 풀어버리면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29일 밤 "일본 측의 공식 발표 직전 외교 경로를 통해 내용을 통보받았다"며 "30일 일본 측으로부터 추가 설명을 들을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교섭내용을 미국에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응

미국 정부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양측 간 협상에 대해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과는 모든 이슈에 대해 아주 가깝게, 자주, 협의하고 있고, 조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납치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논의이기 때문에 이를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 문제에 정통한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북핵 문제와 미사일 발사 등과 관련한 논의에는 진전이 없는데 다른 차원에서 협상이 이뤄지는 데 대해 미국이 편할 리가 없다"며 "특히 이번 합의에서 일본이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부분은 미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태도를 바꿀 유일한 수단이 경제 제재 등인데, 이를 해제하면 북한의 핵 포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최대 변수는 일본이 이번 협상 과정과 결과를 미국에 얼마나 투명하게 전달했느냐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하더라도, 진전 상황과 내용을 우방국에는 제대로 전달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동북아시아 공조를 해치는 식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반응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북·일 간 합의에 대해 중국의 속내는 그리 기쁘지 않다"고 했다. 중·일 관계가 최악인 시점에서 북·일이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달가울 게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북·일 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북한이 고립을 피하려면 외부 세계와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북·일 관계 개선을 공식적으로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일본과 손잡으려는 것에 대해선 중국이 경계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베이징대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중국은 북·일 관계 개선을 계기로 북한과의 냉각기를 끝내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조만간 서울도 방문한다. 중국 주석이 취임 후 북한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평양에 '당근'을 줘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