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지만 순수한… 톈리밍의 ‘맑은 시내’. 시냇가에 앉아있는 두 소녀를 그렸다. 색이 날아간 것 같지만 일부러 희미하게 칠한 것이다.

이토록 맑은 채색 수묵화라니!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열리는 '햇빛, 공기, 물: 톈리밍 중국화전'은 진화하는 중국 현대 수묵화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묵화가 톈리밍(59·田黎明)의 첫 국내 개인전으로 그의 대표작 33점을 선보인다.

보일 듯 말 듯 몽환적인 그림의 향연이다. 인물과 풍경을 묽고 옅은 파스텔톤으로 채색해 얼핏 보면 그리다 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부드러운 햇빛과 맑은 물, 깨끗한 공기는 그의 작품의 핵심 골자. 햇빛 아래에서 수영하는 사람, 시골 처녀,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주로 그렸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소녀의 이미지는 관객의 기분까지 맑게 만든다.

그는 중국에서 "먹을 사용하듯 색을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는다. 얇은 선지 위에 중국의 천연 안료로 색을 칠한 후 먹으로 엷게 선을 메웠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아교를 쓰지 않고 안료에 물만 섞어 썼다. 광물질인 안료와 물이 만나 최대한 담백한 기법으로 동양의 순수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빌딩과 자동차를 그린 도시 그림에서도 인물은 소박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그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 받는 피로를 힐링할 수 있도록 이상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인지난(尹吉男) 중국 중앙미술학원 인문학원 원장은 전시 서문에서 "수묵 표현에 대한 자신의 예민함과 정밀함을 색채에까지 적용해 살아 숨 쉬는 듯한 색감을 이뤄냈다"며 "중국 고대 몰골법(沒骨法)의 심오한 전통을 부활시켜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완성시켰다"고 평했다. 수묵화가 침체해 있는 국내 화단이 눈여겨봤으면 하는 전시다. (02) 720-1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