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준규 전 검찰총장,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란 사실 말고 공통점이 또 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정종렬(62)씨의 단골손님이라는 점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낡은 빌딩 3층 안마원이 그의 가게이자 명사(名士)들의 사랑방이다. 책상 위 '고객 명부'라고 적힌 두툼한 수첩 세 권은 고객명·전화번호를 적은 점자(點字)로 빼곡하다. 그 안엔 임현진·양승목 전 사회대 학장 등 서울대 교수들도 여러 명 등장한다.

정씨는 일을 할 때 항상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맨 양복 차림이다. 스물셋이던 1975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조선호텔 안마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철칙처럼 지켜온 드레스 코드다. "깔끔해 보여야죠."

정종렬(62) 원장이 서울 봉천동 안마원을 찾은 손님에게 시술을 하고 있다. 고객들은“원장님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자자해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밀려 든다”고 말했다.

그는 1978년부터 강남구 신사동·청담동·대치동 등지에서 일하다가 1991년 봉천동으로 일터를 옮겼다. 강남에선 주로 출장 안마였다. 손님들은 그를 막 대했다. 그게 싫어 봉천동에 가게를 냈다. "안마·침술 실력도 좋고 사람도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서울대 교수들이 하나 둘 단골이 됐다.

그의 '파워 인맥'이 드러난 건 2009년 딸 결혼식 때였다. "넉넉한 사돈 집안 하객들이 결혼식장에 와서 웅성대더군요. 시각장애인인 제 친구 수십명이 활보하고 있었으니까요. 허허." 하객들이 신부 집안 얘기를 수군거릴 때 정운찬 당시 총리가 수행원들과 함께 식장으로 입장했다. 그 뒤를 김준규 검찰총장 일행이 뒤따랐다. 놀란 예식장 사장이 뛰쳐나왔다고 한다.

정씨는 열두 살 때인 1964년 '선천성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사물의 흐릿한 윤곽만 식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 2급이다. 하지만 그는 학사 학위만 3개다. 교육학, 법학, 그리고 행정학 학사 학위다. 환갑을 넘긴 지금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정씨는 2000년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한 해 전 여름, 고등학생이던 외동딸(32)의 공부방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테이프 소리에서 자극을 받았다. 시각장애 때문에 접어뒀던 배움의 꿈이 꿈틀거렸다. 수업 첫날 교재도 없이 점자판과 녹음기만 달랑 책상에 올려놓은 정씨를 보고 교수가 말했다. "여기, 그렇게 만만한 곳 아닙니다. 교재도 없이 맨주먹만 불끈 쥐고 오신 분도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교수가 미안해하며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교수님, 판서를 해놓고 '이 사람'(소크라테스) '저 사람'(플라톤)이라고만 말씀하시면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적은 것을 일일이 말씀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날부터 수업이 달라졌다. 교수는 '소크라테스, S-O-C-R-A-T-E-S. 플라톤, P-L-A-T-O-N'처럼 강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물론 영문 철자까지 불러줬다. 강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수천 개였다. 녹음된 내용을 달달 외워야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점자 교재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장 낸 녹음기만 9개였지요." 2004년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방송통신대 법학·행정학 학사학위까지 취득하고, 경제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안마사 생활 40년째인 정씨는 노인과 학생에게 무료로 안마를 해준다. 하루에도 10여명이 그의 안마원에서 무료로 안마를 받는다. 정씨의 꿈은 경제학에 이어 영문학을 공부한 뒤 자서전을 출간하는 것이다. 그는 "육십 인생을 돌아보니 장애인이라고 해서 꼭 고통스럽거나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