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訪中)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선인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黑龍江)에 철도 교량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러시아 영어방송인 RT가 21일 보도했다. 중·러는 1969년 국경 분쟁으로 총격전을 벌였던 아무르강(헤이룽장)에 2016년까지 첫 철교를 연결하려는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이날 "미국 등은 중·러가 국경 문제로 다시 충돌할 수 있다고 예상하지만, 아무르강 철교 건설은 그럴 가능성을 일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20일 상하이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주석을 만나 "양국 간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중·러 밀월의 깊이를 암시한다. 두 사람은 2004년 베이징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국경 분쟁 난제를 협상으로 풀어냈다.

푸틴의 이번 방중으로 중·러는 반미(反美), 반일(反日)을 위한 공동 전선을 펼치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중·러 정상은 20일 회동하고 나서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 반도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南)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날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정상회의(CICA)' 기조연설에서 "CICA를 아시아 안보 협력 기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주도하고 러시아가 후원하는 아시아 안보기구를 만들어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에 맞서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 중·러는 2015년 2차 대전 승전(勝戰) 70주년을 맞아 기념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일제) 군국주의의 '야만적 침략'이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푸틴 대통령은 "역사를 제멋대로 고치려는 시도를 계속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재무장 등에 함께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중국은 동(東)아시아에서, 러시아는 동(東)유럽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시 주석은 '중화 민족의 부흥'을,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를 내걸었다. 그러나 중·러 모두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 직면했다. 중국은 중·일 분쟁 지역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와 남중국해에서 미·일 동맹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러는 이번 푸틴 방중을 통해 각자의 실익을 충분히 챙겼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기업인을 대규모로 데려와 석유·가스·원자력·전력·고속철·여객기·금융 분야의 협력을 강화했다. 경제 제재를 앞세운 서방의 '러시아 포위망'을 중국의 손을 잡고 빠져나가겠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 군사력을 빌려 미·일 동맹 주도의 '중국 포위망'을 돌파할 태세다. 중·러 합동 해군 훈련이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열리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이 중국군 5명을 해킹 혐의로 기소하자 중·러 정상은 '정보 공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은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세계 질서는 미·소 양극 체제에서 미·중·소 삼각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의 제3국 소식통은 "미·중·일·러는 그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견제와 협력을 병행했다"며 "그러나 푸틴 방중 이후 지역의 세력 구도는 '미·일 동맹' 대 '중·러 연합'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