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이 공동 기획해 지난 4월부터 한 달여간 북한 및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135명(해외 86명, 국내 49명)을 상대로 '북한의 미래'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어떤 방식의 통일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60%가 '합의 통일'이라고 답했다. '북한 붕괴로 통일돼야 한다'는 응답은 31.1%뿐이었다.
반면 '단기간(10년 이내)에 통일이 된다면 어떤 방식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80%(국내 전문가의 89.8%, 해외 전문가의 74.4%)가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이라고 답했다. 중국의 전문가들도 58%가 북한 붕괴를 꼽았다. '남북 합의에 의한 통일'은 전체의 8.9%, '무력 충돌에 의한 통일'은 8.1%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론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바람직한 통일 방식으로는 합의 통일을 꼽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전략에 대해 전문가의 95.6%는 북한이 앞으로 핵 능력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 능력 강화'는 51.9%, '핵 능력을 유지한 채 협상 시도'는 43.7%였다. '상황에 따라 부분적 비핵화 노력을 할 것'은 4.4%였고, '경제 발전을 위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은 0%였다. 중국의 전문가들(12명)도 '비핵화'나 '핵 포기' 전망은 한 명도 하지 않았고, 전원이 '핵 강화 또는 유지'라고 답했다.
◇김정은 체제 향후 10년이 고비
향후 3~5년 이내 북한 정치 상황에 대해 48.1%는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내부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은 33.3%, '쿠데타 또는 체제 붕괴'는 2.2%였다. 해외 전문가들은 '체제 공고화'(55.8%)에, 국내 전문가들은 '내부 불안정성'(44.9%)에 더 무게를 뒀다.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5~10년'(38.5%)이라는 전망과 '10~20년'(33.3%) 전망이 엇비슷했다. 한반도 통일 시점에 대해서도 '10~20년 사이'(46.7%)와 '5~10년 사이'(21.5%)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향후 10년 안팎이 김정은 정권은 물론이고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고비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질 경우 그 원인은 지도부 내 권력 투쟁 때문(64.4%)이라는 전망이 가장 많았다. 경제 파탄을 원인으로 꼽은 사람은 27.4%였고, 주변국의 개입(5.2%)이나 주민 봉기(3%)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됐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는 "중·러가 북한 경제 파탄 위험을 높게 보고 있다"고 했다.
◇북 개혁·개방은 계속할 것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2018년 2월까지) 동안 김정은 정권의 대남 정책 방향에 대해 전체의 83%가 '강경책과 유화책을 반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경책으로 일관할 것'이란 전망은 15.6%였고 '유화책을 쓸 것'이라는 전문가는 국내에만 2명(1.5%) 있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북한 개혁·개방 정책이 당분간 계속될 것'(71.1%)이라거나 '더 가속화될 것'(23%)으로 전망했다. '개방을 포기할 것'이라는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22.2%에 그쳤다. 이동선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제한적 개방 정책을 유지하겠지만 이를 가속화하기는 힘들 것이란 의미"라고 했다.
북한 경제에 영향을 줄 핵심 변수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 정책(0%)이 아니라 중국의 대북 정책(44%)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미·중의 정책이 똑같은 영향력(17%)을 미칠 것으로 봤다.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거나(45.9%) 더 심화될 것(45.9%)으로 봤다. 이번 조사는 한·미·중·일·러·유럽 등의 대표적 북한·안보 분야 학자와 연구원, 전직 고위 관료 135명을 상대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