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환자와 사망자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백혈병 발병 근로자 간의 '7년 전쟁'이라 불려온 문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전망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1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분들(백혈병 환자·사망자)과 가족의 아픔, 어려움에 대해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며 "진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 문제를 성심성의껏 해결해 나가려 한다"며 "지난달 9일 (심상정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한 내용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려움을 겪은 당사자, 가족 등과 상의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 기구를 구성하고, 중재 기구에서 보상 기준과 대상 등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을 통해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안전 보건 관리 현황 등에 대해 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재발 방지 대책을 실시하겠다"고 덧붙였다.
권 부회장은 이들과 진행해온 산재 소송에서도 손을 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발병 당사자와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 소송에서 저희가 보조 참가 형식으로 일부 관여해왔는데 이를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는 2007년 3월 기흥 반도체 공장 여직원이었던 황유미(당시 22세)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후 비슷한 백혈병·암 발병 직원들이 산업재해 신청과 행정소송을 잇따라 제기했다. 올 초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삼성전자 백혈병·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단체인 '반올림'은 지난해 "삼성그룹 직업병 피해 제보자가 181명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근로자 10명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와 제3의 중재 기구를 통한 보상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삼성전자는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반올림 측이 "삼성전자가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을 배제한 제3의 중재 기구를 구성하려 한다"며 "심 의원이 제안한 제3의 중재 기구에는 합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중재 기구에 반올림과 피해자 측이 지명하거나 위임한 전문가가 당연히 참여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 의원은 삼성전자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늦었지만 삼성전자가 제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