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으로 긴급 시술을 받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2일 혈압이 안정적인 상태로 회복됐으나 심장 기능 회복과 뇌 손상 여부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상태라고 의료진은 전했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이 회장의 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심근경색 직후 달았던 인공심폐기(에크모)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중환자실에서 저체온 요법 치료 후 경과를 관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 기능 회복에 몇달 걸릴 수도

에크모를 제거했지만 심장 기능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통 에크모는 심장의 펌프 기능이 절반 정도만 유지돼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급성 심근경색 이후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두세 달이 걸린다.

12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입원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한 병원 관계자가 중환자실 입구를 오가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혈압이 안정돼 인공심폐기(에크모)를 뗐지만, 심장 기능 회복과 뇌 손상 여부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 회장의 경우 혈전으로 막힌 부분이 '좌전하행(左前下行) 관상동맥(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으로 알려졌다. 이 혈관은 심장 기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몸으로 깨끗한 피를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하는 좌심실의 절반 이상에 피를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깨어나더라도 심장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 적어도 두세 달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더구나 이 회장이 고령(72)인 데다 폐질환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기 때문에 회복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의식 회복해도 뇌 기능 지켜봐야

의료진은 지난 11일 이 회장에게 심장 스텐트를 시술한 후 뇌 손상을 막기 위해 저체온 요법을 시작해 12일 오전까지 체온을 33도 정도로 낮춰놓은 상태였다.

일반적인 저체온 요법은 옆구리나 머리에 아이스 패드를 대거나 혈관에 직접 차가운 액체가 흐르는 관을 심는 방식이지만, 이 회장은 입는 조끼 형태로 온도를 전자식으로 조절하는 장치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이날 오전 중 냉각 상태를 종료했고, 다시 체온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냉각 상태는 33도 정도로 보통 12~24시간 유지하는데, 이후 다시 12~24시간에 걸쳐(시간당 0.25~0.5도씩) 정상 체온인 36.5도까지 서서히 올린다. 다시 체온을 회복하면서 그동안 저체온 치료를 위해 투여했던 진정제도 서서히 줄인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당초 13일 오전 저체온 치료를 끝내고 이 회장의 의식을 회복시키려했지만, 이 회장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천천히 진정제를 줄이면서 안전한 회복을 유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분간 수면 상태를 유지한 채 치료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자발 호흡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호흡보조기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의식이 돌아와도 뇌 기능이 완전히 회복될지는 최소 한 달은 지나야 판단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장 뇌 기능이 크게 떨어져 보이지 않더라도, 전두엽 등에 미세 손상이 생기면 판단이나 고차원적 뇌 기능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차분한 모습

12일 삼성 임직원들은 전날보다 훨씬 차분한 모습으로 업무를 봤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전 병원에 들러 이 회장의 상태를 살펴본 후 회사로 출근했다. 이 부회장은 계획돼 있던 그룹 임원들과의 오찬 일정도 예정대로 진행했다.

그룹 미래전략실은 매주 월요일에 하는 팀별 주간 회의를 열었으며 계열사 최고 경영진도 평소 일정 그대로 소화했다. 이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비상 경영 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 월요일에 하는 회의 말고 별도 회의는 없었다"며 "경영진도 평소 해오던 대로 경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사장단 회의도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회장의 상태가 호전되고는 있지만 시술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료진의 진단에 따라 삼성그룹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는 그룹 관계자 몇 명만 남아 이 회장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내부에 보고하고 있다. 이 회장 곁은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