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직원의 개인 기부가 기업 기부금? 공시, 믿을 수 있나

입력 2014.05.13 03:04

기부금 총액의 35% 차지하는 기업 기부 지출 내역 정확히 공개하지 않아
내년부터는 공익법인도 기부금 공시 기업은 여전히 자율적 선택에 맡겨

#1. SK네트웍스는 지난 3월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작년 총 21억1600만원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보고했다. 지난 3년간 SK네트웍스의 기부금 지출 내역을 살펴보니 2011년 130억2600만원에서 2012년 1억300만원으로 0.8% 수준까지 곤두박질친 뒤, 작년에 다시 20배 정도 늘어났다. 3년간 고무줄처럼 기부금이 오르락내리락한 이유에 대해 SK네트웍스는 "2012년 지출 예정이었던 기부금의 일부를 2011년에 선집행해 2012년 기부금이 크게 줄어든 것"이라며 "매년 평균적으로 20-30억원을 지출하는데, 2011년에는 SK그룹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행복나래'에 2012년 기부금을 미리 출연하면서 다음해 기부금 총합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2. 에쓰오일은 2012년 기부금으로 142억5900원을 집행했다고 금감원에 공시했지만, 자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는 117억1300만원을 기부했다고 썼다. 2011년 기부금도 각각 104억7300만원과 71억4900만원으로 차이를 보였다. 왜 그런 걸까. 에쓰오일 관계자는 "회사 사회공헌 운영 기준의 차이로 발생한 수치"라면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시민영웅 시상식' 등 회사에서 직접 기획·실행하지 않은 단순 기부금 전달 비용 등을 제외하다 보니 비용이 줄었다"고 답했다.

국가 기부 총액(11조원) 중 35%를 차지하는 기업의 기부금 내역은 과연 정확할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매출액 상위 50대 기업의 2013년 감사보고서에 올라온 기부금 공시를 확인한 결과, 10개 기업이 전년 대비 50% 이상의 급격한 기부금 증감률을 보였다. 5곳 중 1곳 비율이다. 기부금 내역을 감사보고서에 공시하지 않은 기업도 6곳이나 됐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2013년 기업 기부금 공시, 믿을 만한 수치는 없다?

현재 감사보고서에 올라온 기업 기부금 공시의 대부분은 총액을 적은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기업 기부금이 변한 이유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 기부금이 전년 대비 2300여억원 증가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설립 및 회사 성장으로 기부금이 증가했으며, 2014년도 기부금으로 얼마가 잡혔는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년에 비해 기부금이 200억원 이상 줄어든 현대제철(2012년 253억8879만원→2013년 46억3313만원)의 경우 "2012년에는 충남 당진에 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고 시에 기부채납한 내역이 추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한국기업공헌평가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2013 한국 기업 국가·사회공헌도 평가'에 참여했던 한승수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금감원 공시 내용만으로는 기업 기부금이 어디로 전해져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할 수 없었다"면서 "기부금 지출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기업에 내부 자료를 따로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공시한 기부금 내역이 정확한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는 "대다수의 기업은 매출의 0.2~ 0.3% 수준에 맞춰 기부금 비용을 자체 합산·조정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CSR 담당자는 "많은 기업이 경쟁사의 기부금 규모를 두고 서로 견제를 하는 구조인데, 공시하는 기부금을 보면 어떤 기업은 임직원 기부금이나 자사 출연 재단 기부금까지 포함시켜 규모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는 재단·임직원 기부금은 포함시키지 않는데, 단순히 공시에 올린 기부금만으로 '줄세우기'를 당할 때는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회복지기관이나 NGO에 기부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기부금 외에도 스포츠단 운영비, 광고 마케팅 비용까지 기부금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게다가 매년 연말 기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출연하는 기부금의 경우 이 중 50%를 자신들이 원하는 단체에 지정기탁할 수 있는데, 어느 단체에 얼마를 지정기탁했는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익법인도 기부금 공시하는데…기업 기부금만 '깜깜이'

이에 내년부터 국내 주요 공익법인들도 기부금 모금 및 활용 실적을 국세청 정보공개시스템에 의무 공시할 예정인 가운데, 기부의 큰 축인 기업 기부금에 대한 투명성 확보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부금 공개가 투명하지 않다 보니, 정권마다 기업 기부금을 준조세처럼 사용하는 게 관행처럼 돼 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CSR 연구기관 대표는 "기업이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면 순수 기부금이 아닌 비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전경련과 아름다운재단에서도 기업 기부금 통계를 조사·발표하고 있지만 기부금 내역을 온전히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자체 등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후원금 등이 드러날 우려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기부금 공시를 기업의 자율적 선택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회계 감사에 사용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 또는 일반회계기준 어디에도 기부금 내역을 꼭 적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제는 기업이 단순히 기부금을 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중에게 '우리가 이만큼 돈을 잘 쓰고 있다'를 스스로 알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면서 "기부금이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를 공개하고, 공시에 참여한 기업에는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의 기부금 산정 및 공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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