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후원만 했을 뿐인데 범법자 되다니… 기부문화 발목잡는 규제들

입력 2014.05.13 03:04

기부금 받기 전에 모금액 미리 등록해야
예측 불가능한 모금 특성 무시한 법안
비현실적인 규제로 모금단체들 신뢰깎여
계정법안 6개월째 국회 법사위 계류 중

지난달 15일, 시민단체'정의로운 시민행동'은아산사회복지재단, 아름다운재단, 월드비전, 아름다운동행, 함께일하는재단, 삼성꿈장학재단, 참여연대, 지구촌공생회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부금품을 모집하면서 이를 사전에 등록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집하려면 사전에 안행부 또는 관할 시도에 등록해야 한다(제4조1항). 등록 기간 내에 해당 모금액을 넘으면 불법 모금이 되고, 3년 이하의 징역 및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비영리단체들은 "누가, 언제, 얼마를 기부할지 예측이 불가능한데, 이를 사전에 등록하도록 하고 규제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기부금품법이야말로 대표적으로 없애야 할 규제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조선일보 DB
안전행정부 민관협력과에서 담당해온 이 기부금품법은 원래 불법 선거운동과 관치모금이 많았던 1950년대 기부금품 모집금지법이었고, 1990년대 기부금품 모집규제법에서 2006년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바뀌어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모금단체가 이 법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안행부조차도 법의 해석을 두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 등 오히려 기부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부금 규모다. 국세청 통계에 따른 기부금 총액이 약 12조원인 데 반해, 기부금품법에 따라 행정관청에 등록된 기부금은 524억원(2012년)에 불과하다. 비영리단체(NPO) 수가 1만8000개가 넘지만(한국NPO공동회의), 기부금품법에 따라 기부금 모집을 등록한 단체는 20곳에 불과하다.

이에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비영리단체들의 의견을 담은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작년 7월 1일 발의했고, 안행부 또한 그해 11월 말에 정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이 법안은 병합심리돼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법안 심사가 늦어지면서, 예상 외의 검찰 고발이 이뤄지자 비영리단체들은 "불명확한 법 때문에 모금활동을 하는 단체들만 범죄자가 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부금품법 문제점
◇가이드라인 없는 불명확한 법… 기부의 다양성과 성장 방해한다

"기업 관계자에게 단체 모금 캠페인을 이야기하다 기부를 받은 경우, 사전 등록을 해야 하나요?", "정기후원금 모집 광고를 하는 경우도 모금액을 예측해 매번 등록해야 하나요?",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기부를 독려하는 경우도 등록 대상인가요?", "일반인이 페이스북 등 SNS로 모금을 할 경우도 등록 없이 1000만원 이상이 되면 불법인가요?"

최근 비영리단체들 사이에선 이런 질문이 오가고 있다. 10년 넘게 비영리단체 모금전문가로 일한 한 실무자는 "기부금품법을 아예 모르던 단체들이 고소·고발 사례를 듣고, 대형 NPO에 불법 모금인지 여부를 끊임없이 문의하고 있다"면서 "정작 답변을 해야 할 관할 시도에선 '잘 모르겠다'며 안행부로 책임을 떠넘기고, 안행부는 공문 형태로 답변을 주지 않고 전화로 간략한 코멘트만 준다"고 귀띔했다. 안행부 민관협력과 관계자에게 직접 질의한 결과, 위의 질문들에 대해 "모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단체들은 불명확한 조항 때문에 혹여 불법모금이 될까 등록 자체를 꺼린다. 현행법상 기부금품 모집이란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을 타인에게 의뢰·권유·요구하는 행위(제2조)'를 말한다. 경미화 굿네이버스 홍보팀장은 "물품 후원 규모를 미리 예상하는 게 어려운데, 등록할 때 시가액으로 할지, 장부가액으로 할지도 단체마다 해석이 다르다"면서 "단체 연간보고서, 국세청 공시, 안행부에 올려야 하는 기준이 전부 다르다 보니 후원자들이 '어떤 금액이 진짜 기부금이고 사업 집행비냐'며 어리둥절해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은 모금기관과 정부, 전문가가 협력해 모금활동에 대한 윤리헌장을 만드는 등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 각 단체의 자율적 관리에 맡기고 있다.

모집 비용 충당 비율에 대한 규정(제13조)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단체들은 모집된 기부금품의 15% 이내에서만 기부금품 모집, 사용, 결과 보고 등에 소요되는 비용에 충당할 수 있다. 전재현 월드비전 본부장은 "모금액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선 전문 인력과 운영 경비가 필요하다"면서 "직·간접적인 모집 비용을 어느 범위까지 볼 것인지 불명확한 데다, 모집 및 실행을 위한 인건비·경비·인쇄비·회계감사비 등을 포함하면 별도의 출연금이 없는 소규모 NPO들은 사업 집행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예외적으로 사전 등록 문제나 모집비용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유니세프처럼 국내에서 모금된 기부금을 국제 본부로 보낸 뒤, 따로 운영비를 지원받는 국제기구 역시 '15% 모집비용' 조항을 피해갈 수 있다. 결국 국내 토종 단체면서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모금이 힘든 구조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행정비로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을 따로 규정하지 않고, 기부자의 판단과 단체 자율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비현실적 규제… 기부자·모금 단체를 불법행위자로 만들어

비현실적인 규제는 기부자까지 불법행위자로 만들고 있다. 2011년 예상치 못한 기부로 등록 모금액 1000만원을 넘었던 아름다운재단은 한 일반인의 고발로 3년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은 물론 기부자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사무국장은 "검찰에서 고액 기부자·기업 기부 명단을 확보해 '자발적인 기부가 맞느냐'고 직접 전화를 돌리고 조사했다"면서 "이런 전화를 받고 나면 기부자들이 어떤 NPO에라도 후원을 꺼려, 자칫 기부 문화 자체를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일한 시기에 고발당했던 월드비전 역시 혐의 없음으로 판명돼 조사가 종결됐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단체의 신뢰에 금이 간 것 같아 억울하고 찜찜하다"고 토로했다.

예측 불가능한 모금의 특성을 무시한 규정들도 문제다. 지난달 쌍용차 노동자를 돕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의 경우 가수 이효리의 참여로 대중적 이슈가 되면서 보름 만에 예상목표액인 4억7000만원을 넘었고, 이에 주최 측인 아름다운재단은 모금을 바로 중단했다. 등록한 모금액을 넘어설 경우 사후 등록이 불가능해 곧바로 불법모금이 되기 때문이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실장은 "우여곡절 끝에 등록 변경 후 진행된 캠페인에선 2만5109명이 참여, 총 13억5651만446원(5월 6일 기준)이 모였다"면서 "초과 금액을 기부자들에게 즉시 반납해야 한다는 규정 역시 익명 기부나 온라인·SNS 기부 특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각 단체는 이미 등록된 소관부처에 매년 예산·결산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데, 기부금 모집에 대해 별도로 안행부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은 행정 낭비이며 과잉 규제"라면서 "병합심리 중인 개정안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현실적인 규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