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 차집관거·게첨·징구… 한글로 쓰니 더 암호 같네

    입력 : 2014.05.12 03:01

    [10] 독해 어려운 행정용어
    옛 일본식 한자어 여전히 사용해 한자 알더라도 이해 힘든 용어도
    혼란 일으키는 연면적→총면적, 시건장치→잠금장치 써도 무방

    직장인 최모(54)씨는 얼마 전 하천 둔치를 산책하다 '차집관거 맨홀'이란 표지판을 보게 됐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평소 한글세대의 한자 문맹(文盲) 현상을 염려하던 그에게도 낯선 말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차집관거'란 '합류식 하수도에서 우천시의 빗물을 우수 토출실에서 분류한 다음 우천시 오수로서 처리장으로 흘려보내는 관거'라 설명돼 있었다. "'우수 토출실'은 또 뭔가. '관거'는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고 있네…."

    어렵게 단어의 한자를 조사해 본 결과 그제야 뜻이 풀렸다. '차집(遮集)'이란 '막아서(차·遮) 모은다(집·集)'는 뜻이고, '관거(管渠)'란 '관(管) 형태의 배수로(거·渠)'라는 의미였다. 결국 '차집관거'란 '더러운 물을 따로 모아 처리하기 위한 물길'인 셈이다. 또 '우수 토출실'이란 '빗물(우수·雨水)이 섞이지 않도록 토해내는(토출·吐出) 방(실·室)'이란 뜻이 된다. 최씨는 "아직도 이렇게 어려운 옛 일본식 한자어를, 더구나 한자 없이 한글로만 쓴다면 대다수 사람에게는 암호문일 뿐이지 않겠느냐"며 혀를 찼다.

    수가·연면적·시건·게첨?

    좀처럼 해독이 어려운 행정용어는 이뿐이 아니다. 언론에서도 흔히 쓰는 '의료수가'의 '수가(酬價)'란 '보수(수·酬)로 주는 대가(가·價)'란 뜻이다. '의료수가'는 '의료 행위에 대한 보수로 내는 비용'이기 때문에 '치료비'나 '진료비'로 바꿔 쓸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연면적(延面積)'이란 용어 또한 혼란을 일으키기 쉬운 말이다. 이것은 '건물 각 층의 바닥 면적을 합산한(연·延) 전체 면적'이란 뜻으로, '전체 면적' '총면적'으로 바꿔 써도 별문제가 없는 말이다. '시건장치'의 '시건(施鍵)'도 고개를 갸웃거리기 쉬운 용어다. '베풀 시(施)'에 '자물쇠 건(鍵)'이니 '잠그다'란 뜻이다. '시건장치'는 '잠금장치'라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뜻을 알기 어려운 행정용어.

    하지만 한자를 알고 나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도 있다. 건축 등에서 자주 쓰이는 '시방서(示方書)'가 그 한 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시방서'에 대해 '공사 따위에서 일정한 순서를 적은 문서'라고 설명한 뒤 '제품 또는 공사에 필요한 재료의 종류와 품질, 사용처, 시공 방법, 제품의 납기, 준공 기일 등 설계 도면에 나타내기 어려운 사항을 명확하게 기록한다'고 풀이했다. 이미 '설명서'(안전행정부)나 '세부 지침서'(서울시)로 바꿔 쓸 수 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수의시담'도 난해한 용어 중 하나인데, '수의(隨意)'가 '마음대로 함' '시담(示談)'이 '당사자 간의 화해 계약'이란 뜻이니 '가격 협의'라는 말에 가깝다.

    명사뿐 아니라 동사(動詞)까지도 이처럼 어려운 단어를 써서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현수막을 내걸다'라고 하면 될 것을 '현수막을 게첨(揭添)한다'고 하거나, '요청한다'를 '징구(徵求)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 예다.

    "한자를 숨겨 더욱 불통(不通)"

    이처럼 굳이 어렵기만 한 구식 한자어들로 된 행정용어들이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①뭔가 대단히 전문적인 용어인 것처럼 포장해서 관공서나 특정 분야 전문가의 권위를 높이고 ②일반인이 관공서의 행정 절차를 잘 알 수 없도록 하며 ③과거부터 써 오던 용어이기 때문에 좀처럼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는 쉽게 고치는 게 맞겠지만, 한자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한글로만 쓰는 것 역시 소통을 가로막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 관공서에서 들고나온 '행정용어 개선책'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쉬운 한자어조차 우리말로 풀어내려는 과도함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서울시는 '매표소'를 '표 사는 곳' '독거노인'을 '홀몸노인'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서울시 문서에서 '매표소' '독거노인'이란 말이 쓰이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많은 사람이 '독고노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독거노인'의 '독거(獨居)'가 '혼자 산다'는 뜻이라는 것부터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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