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충’이라니… 서울-지방 출신 삶의 격차 갈수록 커지니까

입력 2014.05.07 10:30 | 수정 2014.05.07 10:33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집’이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원룸촌에서 방을 구하려는 학생이 전단지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조인수 조선일보 기자
대학생 정현규씨와 김문주씨는 26살, 동갑내기 친구다. 동아리에서 만나 금세 의기투합했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정현규씨는 대구 출신으로 자취를 하고, 김문주씨는 서울 서초구에서 태어나 자라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정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원룸 한 달 월세는 50만원. 전기세와 인터넷 비용은 별도다. 정씨가 직접 과외를 두 개 하면서 월 70만원의 돈을 벌고 있지만, 월세며 생활비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생활비만 해도 한 달에 50만원이 들어간다. 교통비만 10만원이 넘는 달도 많다. 돈을 아껴 쓴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하다. 가끔은 학생식당에서 세 끼를 다 해결하기도 한다. 취업을 준비하느라 영어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월 20만원의 수강료를 낼 능력이 없다. 때문에 부모님이 매달 50만원씩 꼬박꼬박 정씨의 통장에 입금을 해준다.

김문주씨 역시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고 있지만 김씨의 용돈은 정씨처럼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씨가 한 달에 받는 용돈은 30만원.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때문에 30만원의 용돈을 아껴 쓰면 가끔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김씨는 일주일에 5일,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가 소개해 준 재단법인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월 40만원을 받는다. 이 40만원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 영어 학원과 헬스장도 등록했고 가끔 읽고 싶은 책을 사거나 보고 싶었던 공연도 본다.

김씨는 “지방 출신 친구들을 보면 가끔 ‘내가 편하게 사는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집값이 따로 안 들고, 식사도 집에서 해결할 때가 많아 식비도 절반 정도만 들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이 친구 정현규씨와의 재정 상태를 비교해 본 김씨의 소감이다. 김씨의 소감을 듣던 정현규씨가 용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아버지 생신이라고 고향에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고속버스로 왕복하는 데만 5만원, 아버지 생신 선물을 산다, 뭐한다 돈을 쓰고 나니 용돈이 딱 5만원 남았더라고요. 과외비 받는 날까지 한참 남아서, 다시 아버지에게 용돈을 구걸한 적이 있었어요.”

서울의 집값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방 출신들의 서울살이가 고달파지고 있다. 지방 출신들이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방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고되게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인데, “‘지방충’들 때문에 우리(수도권 출신)도 취업이 어렵다”며 마치 외국인 노동자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출신보다 열악한 생활여건 자체가 족쇄가 되면서 지방 출신이라는 점이 결혼과 취직 때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가 조사한 ‘이성의 과거 경험 중 결혼상대로 평가할 때 가장 큰 감점 요인’ 결과는 지방 출신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준다. 남성의 36.0%는 여성의 ‘유학’ 경험을, 25.8%는 ‘자취 등 독립 생활’ 경험을 감점 요인으로 꼽았다. ‘자취 등 독립 생활’이 왜 감점 요인인 것일까.

대학생 김효섭씨는 지난 학기 교양 수업에서 ‘대학생의 연애 문화’라는 리포트를 제출한 적 있다.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김씨는 서울 신촌 대학가 일대를 돌며 설문조사를 했는데, 위 결혼정보업체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남성 30명 중 11명이 ‘자취 경험이 있는 여자는 결혼 상대로 꺼려진다’고 답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취 중에는 자유로운 연애 경험이 많을 것 같다는 편견 때문이고, 둘째는 결혼할 때는 지방 출신보다 서울 출신이 편하다는 것 때문”이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결혼정보업체 ‘온리유’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맞선 조건 백태’를 보면 여성들이 ‘나보다 더 작은 도시에 거주하는 남자는 싫다’고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거주지 상향 지원’을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물론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수도권이 중심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지방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일찍부터 ‘고단함’ ‘자수성가’를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지방 출신 성공 사례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예컨대 최근 10년간(2003~2013년) 임용된 판사 1959명 중 서울·경기 출신은 711명으로 36.3%에 이른다. 1999~2002년만 해도 넷 중 하나에 불과했던 서울·경기 출신 판사들이 최근 10년간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출신으로는 성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불평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2012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에서 제출된 자료를 보면 3년간(2009~2011년) 21개 전국 로스쿨 입학생 4594명 중 서울·경기 출신은 3082명으로 67.1%에 달했다. 서울대 입학생 중에서도 수도권 출신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2012학년도 서울대 입학생 중 수도권 출신 학생은 58.1%, 2013학년도에는 58.7%였다. 2004학년도에 수도권 출신 입학생이 전체의 50.9%에 달했던 것을 볼 때 ‘지역 균형 선발’과 같이 지방 배려 차원의 입시 전형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출신 학생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지방 출신의 성공 스토리는 찾기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학, 취업 등을 위해 여전히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지만 “지방 출신과 서울 출신의 출발점이 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장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견 기업에 입사한 지 4년차 대리인 이소정씨와 같은 기간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유희진씨를 비교해 보면 그렇다. 서울 출신인 유희진씨의 연봉은 약 3500만원. 서울 동작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작년 8월 결혼해 독립했다. 결혼 당시 유희진씨는 남편과 함께 서울 마포구의 20평형대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3억원이 조금 안 되는 전세금은 두 사람이 모은 돈으로 거의 마련할 수 있었다. 연봉 5000만원을 받는 남편과 유씨가 직장 생활 각각 4년, 6년 동안 모은 돈은 2억5000만원. 양가 부모님이 보태준 1억원까지 합해 신혼여행, 결혼식까지 무리 없이 다 치렀다.
반면 9월 결혼식을 치를 예정인 지방 출신 이소정씨는 신혼집을 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이씨와 대전이 고향인 이씨의 예비 신랑, 둘 다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모은 돈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씨 역시 연봉이 4000만원에 달하지만 매달 월세 40만원을 내고 나면 한 달에 100만원 남짓만 저축할 수 있었다. 이씨의 예비 신랑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오피스텔에 살면서 매달 60만원의 용돈을 썼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직장 생활 4년차에 모은 돈은 1억5000만원 정도. 이 돈으로는 서울 시내에서 전세 아파트 하나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양가 부모님이 돈을 보태준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세 자금 대출을 알아봐야 할 형편이다. 이씨는 “지방에서 한 번 더 피로연을 치르는 비용에, 결혼식 준비하느라 양가 부모님이 서울을 오가는 시간과 비용이 모두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가난한 편이다. 이상록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의 논문 ‘한국사회 빈곤구조의 지역 편차 분석’을 보면 지방의 빈곤율이 두 배 정도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이 교수는 일을 하면서도 빈곤한 ‘근로 빈곤(work but poor)’의 양상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살려면 지방에서보다 돈이 더 든다.

2011년 통계청 사회조사의 ‘지역별 가구당 월평균 최소 생활비’에 따르면, 서울은 254.2만원으로 전국 평균(229.7만원)보다 많았다. 경기도는 서울보다 조금 더 들어 매달 261.8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기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생활비가 드는 곳은 울산(240.7만원)으로 서울과는 14만원 차이가 났다. 지방 중산층의 수가 적어지고, 그 기반도 약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는 요즘에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홍형옥 경희대 교수(주거환경학)는 “지방 출신 대학생의 35.4%가 월세에 살고, 13㎡(4평) 이상 33㎡(10평) 미만의 집에서 사는 경우가 38.9%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임대주택, 특히 좁은 원룸 등에서 월세로 산다는 것은 빈곤층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한데 지방 출신의 상당수는 주거 문제에서부터 빈곤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의 전세가격지수를 보면 2012년 11월을 100으로 했을 때 서울의 전세가격지수는 2003년 11월 72.5였던 것이 2014년에는 108.9로 올랐다. 반면 5대 광역시 전세가격지수는 2003년 11월에 76.5였던 것이 2014년 3월에 105.5로 서울에 비해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다. 서울에서 살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대졸자의 취업에서도 출신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2년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석사 논문을 제출한 최인숙씨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출신 고등학교가 서울이 아닌 지방일 경우 취업률이 훨씬 낮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의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를 기초로 분석한 최씨의 논문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지방 출신자의 서울 지역 취업률은 74.81%으로, 서울·경기 출신의 취업률 75.6%보다 낮다.

결국 출신지가 향후 삶의 계급을 가르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광영 교수는 “상위권 대학 진학률도 지방 출신보다 서울, 특히 강남 3구 출신이 많고 상경한 ‘서울 유학생’들은 경제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가 졸업을 해도 서울 출신과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며 “결국 중산층 진입이 어려워지는 사람 중에는 지방 출신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도권 쏠림현상을 완화하고, 도시 생활에서 생기는 절대적 빈곤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신 교수의 말이다. 신 교수는 “지방 균형 발전과 주거 안정화 등의 복지 계획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