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부직포 속으로

입력 2014.04.30 03:03

서을호·김경은 건축가 부부
"섬유와 건축, 보호막이라는 공통점… 소재의 중요성 보여주고 싶었다"

서을호(오른쪽) 서아키텍스 대표와 김경은 소장 부부 사진
서을호(오른쪽) 서아키텍스 대표와 김경은 소장 부부. /코오롱 제공

블라인드처럼 겹겹이 매달린 부직포(不織布)가 환상적인 입체 공간을 빚어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층층이 쌓여있는 사람의 형상이 쏟아질 듯했다. 작품명 '4해비타트(Habitats)'. 각각 40장의 부직포 레이어(layer)로 구성된 설치물 4개가 거대한 전시장 한복판에 놓였다. 중국 베이징 798 예술특구에서 25일 개막한 'Inspiring Journey(영감 여행)-소재로 꽃을 피웁니다'전(展)이다.

부직포는 베틀에 짜지 않고 접착제나 섬유 자체의 밀착력으로 결합한 시트 모양의 천이다.

"에어 필터, 쇼핑백, 마스크…. 부직포는 흔히 쓰고 쉽게 버리는 일회성 소재인데 사람들은 완성품만 기억할 뿐 소재는 잘 몰라요. 소재는 완성품의 성능과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서아키텍스의 서을호(50) 대표와 김경은(42) 디자인 소장 부부가 아이디어부터 디자인, 제작, 설치까지 맡았다. 특이하게도 기업(코오롱)이 주최하고, 설계사무소(서아키텍스)가 작업을 맡은 전시다.

시작은 3년 전. 서 대표가 코오롱 경영진과 얘기를 나누다 영감을 받았다. "코오롱이 만드는 섬유 소재가 의복, 즉 사람의 보호막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건축도 보호막이 기본 역할이라는 점에서 같잖아요. 소재가 주인공이 되는 전시를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여졌어요."

쉽게 쓰고 버려지는 소재가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부직포 40장을 겹겹이 매달아 만든 입체 공간. 건축과 미술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다.
쉽게 쓰고 버려지는 소재가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부직포 40장을 겹겹이 매달아 만든 입체 공간. 건축과 미술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다. /코오롱 제공
조건은 세 가지. 프린트가 가능하고, 수직으로 서야 하고, 포장 운송이 쉬운 소재일 것. 그래서 결정된 게 부직포였다. 하얀 부직포 위에 채도 높은 붉은색·노란색 디자인을 프린트했고, 사람 형체로 자른 후 커튼처럼 봉에 겹겹이 걸었다. 김 소장은 "인체를 보호하는 첫 번째 보호막이 피부, 그 위에 의복이고 그다음이 주택이다. 첫 번째 설치물을 통과해 다음 설치물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자신을 직면하고 타인과의 관계로 넓혀간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부부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베테랑 건축가들이다. 둘 다 '빵빵한'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다. 서 대표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동양화가 서세옥의 아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그의 형이다. 김 소장도 건축가 아버지(고 김성국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았다.

2010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돼 서도호 작가와 작업한 '청사진(blue print)'을 선보였다. 서울 청담동 하이트맥주 본사 미술관, 경기 용인시 현대차그룹 마북연수원의 리노베이션과 설치 작품이 세 사람의 결과물이다. 베이징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서울로 옮겨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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