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분노와 절망을 감사와 희망으로 바꿔주는 사람들

조선일보
입력 2014.04.23 03:02

22일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 영결식에 시민 수십 명이 찾아왔다. 박씨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스물두 살 그를 떠나보내며 편히 잠들기를 빌었다. 지난 사흘 빈소에도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아들 손 잡고 온 엄마부터 단원고 학생 또래 고교생까지 눈물을 훔치며 고마워했다. 박씨가 탈출을 도와줘 목숨 건진 승객도 머리를 숙였다. 복도엔 보낸 사람 이름이 없는 조화(弔花)가 가득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쓴 이는 '의로운 당신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박씨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앞다퉈 도망치는 와중에도 끝까지 남아 승객을 챙겼다. 학생들에게 "빨리 위로 올라가라"고 고함치며 구명조끼를 나눠줬다. 나이 든 승객에겐 의자를 구해 와 받쳐줬다. 여학생이 "언니는 왜 구명조끼를 안 입느냐"고 묻자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갈게"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박씨는 대학에 다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휴학하고 세월호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를 의사자(義死者)로 기리자는 청원에 벌써 3만여명이 서명했다.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 남윤철 교사는 기우는 선실 비상구에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줬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 대피시켰다. 그는 가까스로 갑판까지 올라왔다가 아래층 객실로 다시 내려갔다. 안내 방송대로 객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물이 머리에 차오를 때까지 밀어냈다. 그는 이튿날 세월호 주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 교사의 6반 제자 박호진군은 쓰러진 자판기에 끼여 있던 다섯 살 여자아이를 안고 나왔다. 90도 넘게 기운 세월호 난간을 붙들고 "아기요, 여기 아기 있어요" 외쳤다. 박군은 아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를 벗어났다. 열일곱 살 소년은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셔서, 부모 찾으며 우는 아이를 두고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온 나라가 공황 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됐던가 하는 실망과 부끄러움에 온 국민이 가슴을 앓고 있다.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는 분노와 자책이 어둡게 드리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에서 사람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름 불러줄 의인(義人)과 영웅이 박지영·남윤철·박호진뿐일까.

군 잠수 요원들은 밤낮없이 차갑고 탁한 바다로 묵묵히 뛰어들고 있다. 22일엔 몸이 마비된 요원이 구축함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생업 접고 전국에서 달려온 민간 다이버도 500명을 넘는다. 변변히 밥 챙겨 먹을 겨를도 없이 쪽잠 자면서도 내 자식 같은 바닷속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자원봉사자 2000명도 모여들었다. 음식점 하던 이는 국밥을 끓이고 주부들은 설거지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진도군청에는 구호품을 전하겠다거나 도울 방법 알려달라는 전화가 하루 몇 천 통씩 쏟아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수원 권선중 3학년 8반 아이들도 진도로 전화를 걸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야무지게 알아봤다. 세면도구와 종이컵을 상자 열 개에 담아 써붙였다. '조금씩 모아봤습니다.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진도군청으로 고교생들이 수건·비누·속옷들 보내온 것만 500건을 넘었다. 하나같이 '기적이 일어나 갇힌 아이들이 돌아오길 빈다'는 편지와 함께 왔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매일 사망자 숫자만 늘고 있다. 모두가 마음 둘 곳, 기댈 곳 없이 황망한 일주일이었다. 그래도 의롭고 마음 따스한 사람들의 온기(溫氣)가 분노와 절망을 어루만져준다.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힘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있다. 사람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다시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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