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 '유래'없이 '상막'하다? 소리대로 쓰는 엉뚱한 단어

    입력 : 2014.04.21 03:04

    [9] 잘못된 어휘들의 등장

    유례→유래, 삭막→상막… 한자 뜻 몰라 유음어 쓰는 오류
    '남을 깎아내리다' 폄훼 잘못 쓴 폄하… 사람들이 많이 써 사전에 오르기도

    "실내 수영장에서 남자가 입기 문안한 수영복 좀 추천해 주세요."

    "이날은 문안한 화이트 와인으로 축하하며 시작~."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문안(問安)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웃어른께 안부를 여쭈다'라고 풀이돼 있지만, 이 뜻으로는 위 문장의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별로 어려움이 없다'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의 한자어 '무난(無難)'을 몰라서 빚어진 맞춤법 오기다. 해당 단어의 한자가 무엇인지 모르다 보니 발음만 같고 어원과 뜻이 전혀 다른 엉뚱한 어휘를 쓰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유래'없이 '상막'한 일이라고?

    "오디션 사상 유래없는 남녀 동시 돌풍."(한 인터넷 뉴스의 제목)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개방형 혁신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한 방송 뉴스의 문장) '유래없다'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유래(由來)가 없는' 말이지만 이처럼 미디어에서조차 자주 쓰이고 있다. 이 말은 '같거나 비슷한 예가 없다' '전례가 없다'는 뜻인 '유례(類例)없다'를 잘못 쓴 것이다.

    최근 등장한 잘못된 한자어 표현들.

    "메마르고 모래가 흩날리는 상막한 사막에서도 뽀얀 피부와 변함없는 미모로 눈길을 끌었다."(한 경제지의 인터넷판 뉴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설 현장의 상막한 분위기를 깨끗한 이미지로 바꾸고 있다."(한 전문지의 기사) '상막하다'란 말은 '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아리송하다'는 뜻인데 역시 이 기사들의 문장에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사실은 '쓸쓸하고 막막하다'는 뜻의 '삭막(索莫)하다'를 소리 나는 대로 잘못 쓴 것이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연예인(演藝人)'을 '연애인'으로, '폐해(弊害)'를 '폐혜'로, '훼손(毁損)'을 '회손'으로 쓰는 예도 많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처럼 우리 교육과정이 밑바닥부터 잘못돼 있다는 것이 드러나 창피할 지경"이라며 "기초적인 한자 교육만 제대로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황당'과 '당황', '엄한'과 '애먼'

    이미 상당수의 사람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널리 쓰이는 어휘들도 있다. "소변이 급한데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황당했다" "물건값을 줬는데 받지 않았다고 하니 황당하다" 같은 문장은 단어를 맞게 쓴 것일까? '황당(荒唐)하다'란 말의 뜻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는 의미로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위 문장들에서 '황당하다'는 표현은 '놀라거나 다급해 어쩔 줄을 모르다'는 뜻인 '당황(唐慌)하다'를 잘못 쓴 것이다.

    "괜히 엄한 사람 잡지 마라"는 식의 표현도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엄(嚴)하다'는 것은 분명 '규율이나 규칙을 적용하거나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성격이나 행동이 철저하고 까다롭다'는 뜻인데, 이와는 달리 '엉뚱한'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엉뚱하게) 느껴지는'이란 뜻인 '애먼'을 '엄한'으로 잘못 쓴 결과다. '엄(嚴)' 자에 '엄격하다' '혹독하다'는 의미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혼동되지 않았을 일이다.

    잘못 사용하는 단어로 지적됐지만 사람들 사이에 많이 쓰여 사전에 오른 말도 있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폄하(貶下)'는 '남을 깎아내려 헐뜯음'이라는 뜻인 '폄훼(貶毁)'를 잘못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폄하'에 대해서 '치적이 좋지 못한 수령(守令)을 하등으로 깎아내리던 일'이란 기존 뜻 외에 '가치를 깎아내림'이란 뜻이 추가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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