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이 간다] 태화산에선 말썽쟁이도 人材…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면 안 됩니다

    입력 : 2014.04.19 03:00

    태화국제학교 이사장 박만용 목사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태화산(太華山)에도 봄이 왔다. 해발 641m 산기슭이 총천연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32년 전 이곳을 헤맨 사내가 있었다. 땅을 찾느라 구두 두 켤레가 닳아 해졌다고 했다.

    3만평을 사고 나니 주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악산(惡山)에서 뭐하려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박만용(朴萬用·77·사진)의 삶을 알았을 리 없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그는 워낙 병약해서 호적을 생후 3년 뒤에야 올렸다.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6·25전쟁이 터져 3년을 놀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교장이던 대구 성의고 졸업 때도 운이 없었다. 의대(醫大)에 합격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한 것이다.

    이 불쌍한 청춘은 용문산기도원으로 들어갔다. 화를 달래려고 한 것인데 그때 뜻밖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교회에서 10년, 수원교회에서 34년 목회했다. 감리교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감독(監督)도 됐다.

    신(神)을 향해 정열을 불태우던 시절, 남들에게는 험해 보이는 태화산이 눈에 들어온 것도 운명일 것이다. "딱 기도원 터로 보였어요. 신도들이 땀 흘려 벽돌 한 장씩 쌓아 만들었습니다. 봉사가 이룬 기적의 현장이지요."

    2007년 은퇴해 이곳에 올 때 박만용에겐 꿈이 있었다. "여생을 육영 사업에 바치려 했습니다. '크리스천 글로벌 리더', 그게 두 번째 삶의 목표가 됐지요." 2007년 설립된 태화국제학교의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어떤 부모가 이 산골짝 학교에 아이를 보내겠어요. 처음엔 말썽쟁이투성이였습니다." 말썽도 가지가지였다. 술 먹는 아이, 담배 피우는 아이, 밤에 탈출해 노래방 가는 아이, 싸우는 아이…. 심지어 산골짝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아이도 있었다. 요즘 학교는 못된 짓 해도 '강전(强轉)', 즉 강제 전학시키곤 만다.

    태화국제학교 이사장 박만용은 60명으로 개교한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의지가 있는 아이들에겐 교사 전원이 나서 최선을 다했다. 이른바 '최소 학생 선발, 최대 교육 실시' 방침이다.

    태화국제학교 이사장 박만용 목사. 태화산.

    이런 박만용의 뜻에 반해서 유명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엔 '토플의 신(神)'이라는 영어 교사 박종화도 있었다.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지만 예외는 있다. 태화국제학교의 실적이 그걸 말한다.

    개교 5년째인 2012년부터 이 학교 졸업생은 모두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다. 특히 작년 졸업생은 전원 장학금을 받고 갔다. 그러다 보니 이름 없는 산기슭 옛 기도원 터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젠 말썽쟁이보다 외고(外高) 수준 학생이 대다수입니다. 한국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재들이지요. 우리 학교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미국 공인 수능시험의 하나인 ACT 시험센터로 지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박만용은 올 9월 이곳에 7층 건물을 세운다. "2층부터 4층까진 현대식 기숙사, 그 밑엔 지하 1층까지 교실을 짓습니다. 내년 2월 완공될 거예요."

    팔십을 앞둔 노인(老人)의 눈에 '꿈'이 보였다. "우리 학생들, 공부만 잘하는 기계로 만들 생각은 없어요.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 교훈인 경천애인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글로벌 인재도 그래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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