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관공서를 점령해 온 친(親)러시아 무장 세력은 "14일 오전(이하 현지 시각)까지 투항하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최후통첩을 일축했다. 대신 마리우폴·호르리브카 등 다른 지역 관공서를 추가 장악했다. 세르게이 타루타 도네츠크 주지사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친러 무장 세력 진압을 위한 군사작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는 친러 세력이 장악한 카리프 주청사를 탈환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친러 무장 세력이 '피의 대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관심은 내전(內戰) 양상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서방의 무력 충돌로 확산할지에 쏠려 있다.

러시아는 유사시 국경을 넘어 진격할 준비를 마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공개한 위성사진에선 전투태세를 갖춘 러시아 항공기와 헬리콥터, 탱크 등이 대거 포착됐다. 나토는 이곳에 러시아 병력 4만명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군 일부가 이미 우크라이나 동부에 잠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국제관계 연구소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안드리안 카라트니키 선임연구원은 "동영상 분석 결과, 잘 조직된 러시아군이 정부 청사 무력 점거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동부의 합병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비탈리 추르킨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내전을 피할 수 있느냐는 서방 측에 달렸다"고 말했다. 서맨사 파워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며 반박했다.

서방도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나토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에스토니아 등에 전투기 12대를 배치하고, 폴란드에 공중조기경보 관제시스템(AWACS) 정찰기를 파견했다. 필립 브리들러브 나토군 최고사령관은 "미군을 배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외무장관은 14일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미국과 EU가 러시아와의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군사 행동을 쉽사리 결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충돌 지역 지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의 재판(再版)이 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연구소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소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합병을 위해 장기적 계획을 갖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방과의 군사적 충돌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국경을 침범하는 건 러시아로서도 부담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 외교부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크림반도 합병을 통해 러시아는 자국 이익을 위해 단호하게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군사작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러시아의 1차 목표는 내달 25일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친서방 정권의 등장을 막고, 동부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연방제 개헌을 관철하는 것이다.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이번 대선 때 연방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크림반도처럼 지역 주민 투표가 아닌 전체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연방제 개헌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