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번 주말 50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9일 현재 이 영화의 누적 관객은 46만1662명, 박스오피스 2위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에 50만 관객이 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영진위가 지정한 '다양성 영화' 중에서는 '미드나잇 인 파리'와 '원스'가 각각 35만명, 22만명을 동원한 것이 기존의 기록이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다양성 영화' 신청을 하지 않았으나 규모나 예술성 면에서 다양성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영화의 50만 관객은 상업영화의 500만 관객보다 더 많은 숫자로 체감된다. 이 영화 때문에 '아트버스터'(예술과 블록버스터를 합친 말)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에서 촬영했다. 한 장소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촬영 기법을 동원해 합성한 장면이 많다.

이 영화의 흥행은 미약하게 시작해 창대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67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면서 박스오피스 6위에 올랐다. 당일 각각 200개 가까운 스크린에서 상영한 '수상한 그녀'와 '노예 12년'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스크린 수는 개봉 5일 차에 128개, 개봉 10일 차에 233개로 늘어나면서 1일 관객이 점점 증가했다. 9일 현재 박스오피스 순위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액션 '쓰리 데이즈 투 킬'과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블록버스터 '노아'보다 높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흥행 성공은 '교양영화'이자 '취향영화'이기 때문이다. 교양영화는 상업영화보다 개성 있고, 난해하고 급진적인 예술영화보다는 쉬운 영화를 지칭한다. 흥행에 성공한 다양성 영화들이 대부분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한 여인이 살해되면서 살인 용의자가 된 주인공이 진범을 밝혀내는 미스터리이자 모험극이다. 어려운 이야기도 거창한 주제도 없다. 주드 로, 틸다 스윈튼, 에이드리언 브로디, 레이프 파인즈 등 연기파 배우가 20명 가까이 나오면서 앤더슨의 영화와 낯선 관객의 거리를 좁혀준다.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낸 감독의 상상력과 장난기 가득한 대사는 이 영화를 쉽지만 진부하지 않은 교양영화로 만들었다.

SNS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함께 언급되는 단어가 바로 '취향'이다. 앤더슨 감독은 초기작에서부터 엄격하게 통제한 화면, 독특한 의상과 소품으로 취향을 인정받았다. 그는 최근 프라다 향수 '캔디' 광고 영상도 찍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런 앤더슨 감독의 취향과 정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분홍색의 웅장한 호텔부터 파스텔색의 빵이 층층이 쌓인 케이크, 오시포프 러시안 포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몽환적인 음악, 배우들의 몸에 딱 맞게 재단된 제복까지, 마치 장인이 공들여 만든 성인용 장난감 같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앤더슨의 취향을 인정하고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취향이 곧 권력이라는 '취향의 시대'에 관객들이 이 작품에 유독 열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