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안부 할머니들께 국밥이라도…" 50만원 봉투 보낸 환경미화원

    입력 : 2014.04.03 03:02 | 수정 : 2014.04.03 10:43

    1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만원짜리 우편환이 든 편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위안부 할머니들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해 주세요.' 편지의 주인공은 인천 남동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신웅선(54)씨였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신씨는 젊은 시절 해산물 납품, 시내버스 기사 등을 하다가 나이 마흔둘에 환경미화원이 됐다. 그게 2002년이었다. 환경미화원 생활 2년 차에 병마가 그를 덮쳤다. 병원을 찾은 그는 척추에 염증이 생기고 관절이 굳는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옷을 못 입을 만큼 통증이 심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던가. 손발 끝에 피가 안 돌아 추운 날 고통이 갑절이 되는 증상마저 나타났다.

    [길]

    아들·딸은 고등학생이었다. 은행 빚 1억원으로 마련한 27평짜리 주공아파트 원리금은 상환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하루 열 시간의 노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새벽 거리로 나서던 어느 겨울날. 그는 "내가 진 짐을 내려놓을 생각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했다.

    차마 삶을 버리지 못한 그는 '이렇게 죽을 바에야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월급에서 얼마씩을 떼내 모금회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 1년간은 아내 몰래였다. "부조를 해야 한다" "돌잔치에 간다"고 둘러대던 그는 결국 아내 안연숙(56)씨에게 들키고 말았다. 사연을 알게 된 안씨는 "나도 거들겠다"며 월급 150만원을 받는 공영 주차장 주차 요원 일을 시작했다.

    신씨는 4년 전부터 월급 200여만원 가운데 아예 5분의 1을 떼어 기부해왔다. 그 액수가 어느덧 1000만원을 넘었다. "힘들지만 일을 하면 뼈가 굳을 새가 없으니 돈도 벌고 기부도 하는 일석이조지요." 아직 갚지 못한 대출금 6500만원은 매월 50만원씩 갚아나가고 있다. 신씨는 "빚을 다 갚고 나면 기부금을 월급의 30%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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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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