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은 유럽연합(EU)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유럽공동체(EC) 소속 국가의 정상들은 동·서독 통일 1년 후인 1991년 12월 역사적인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체결했다. 시장 통합에 국한된 EC를 정치·경제 공동체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2년 후인 1993년 11월 마침내 EU가 출범했다. 역사와 문화·언어가 다른 28개 국가, 5억여명의 사람이 국경의 제한 없이 '한 나라 국민'처럼 살게 된 것이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 총리는 "독일 통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연합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C가 경제·정치적 통합체인 EU로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마르크'라는 강력한 통화를 갖고 있던 독일의 상황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통독(統獨)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 요아힘 라그니츠 독일 IFO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프랑스가 독일 통일을 승인하는 대가로 서독에 마르크화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고, 서독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지금의 EU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독은 또 동·서독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나뉘어 있던 유럽의 정치 지형도 허물었다. 동유럽 국가들까지 EU 회원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독일 통일과 유럽연합의 출범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인식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07년 EU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럽 통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정치 지도자'로 독일 통일을 이뤄낸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