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박근혜·시진핑 헤이그 회담으로 본 중국인의 화법

입력 2014.03.31 11:51 | 수정 2014.03.31 11:59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황푸(黃浦)강은 상하이(上海)를 동서로 가르며 남북으로 흐른다. 황푸강의 동쪽을 푸동(浦東), 서쪽을 푸시(浦西)라고 부른다. 푸동에는 중국 경제 발전의 상징인 빌딩 숲이 있고, 푸시에는 1920년대부터 건설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늘어선 와이탄(外灘)이 있다.

중국 대륙 전체의 지도를 놓고 보면, 상하이는 길이 6280㎞의 창강(長江)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다. 창강은 이집트의 나일강과 브라질의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 창강은 중국에서 제일 길다. 길이 5464㎞인 황허(黃河)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길다. 창강은 하구의 상하이를 거쳐 동중국해로 흘러들어 가고, 황허는 베이징 남쪽을 거쳐 산둥(山東)성 북쪽의 보하이(渤海)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중국인은 창강과 황허를 ‘두 마리의 용’이라고 불러왔다. 그래서 자신들을 ‘용의 후손(龍的傳人)’이라고 한다. 중국인은 1980년대 초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네 나라가 빠른 경제발전을 하자 이들을 ‘사소룡(四小龍·네 마리의 작은 용)’이라고 불렀다. 중국인의 가슴속에 ‘대룡(大龍)은 우리 중국’이라는 자부심을 감추고 있었다.

1980년대 초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밀어붙이던 중국공산당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90년 4월 상하이를 시찰한 뒤 “상하이를 룽터우(龍頭)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창강 하구 중국 대륙 동해안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상하이를 중국 경제 발전의 중심도시로 건설하라는 뜻이었다.

그때로부터 22년, 상하이의 푸동 지구에는 중국이 온 세계에 자랑하는 빌딩의 숲이 들어서 있다. 창강을 기다란 용의 몸통에 비유한다면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동의 빌딩 숲은 갈기털이 무성한 채 여의주를 입에 물고 불을 내뿜는 용의 머리가 연상된다.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동의 빌딩 숲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한 투자금융회사(미래에셋)의 이름이 유일하게 끼여 있다. 1992년 가을 필자가 이곳을 처음 취재했을 때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동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상하이 푸동을 용의 머리로 만들라”는 덩샤오핑의 말을 전해 듣고 그 의미를 간파한 홍콩과 싱가포르, 해외 화교 자본가들은 푸동에 앞다투어 달려와 마천루를 지어 올렸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은 한국 대기업들은 투자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 푸동 지역의 마천루 숲에는 한국 대기업 소유의 빌딩은 서 있지 않다. “상하이를 용의 머리로 만들라”는 덩샤오핑의 지시에 담긴 중국인들의 수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상하이 푸동 지구
우리가 중국인들의 화법(話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빚어지는 안타까움은 지난 3월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회담을 보는 온도 차에서도 나타났다. 청와대는 이날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확실히 반대하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해하고 있어 중·북 간에는 핵 문제에 관해 이견이 있으나, 현재 중국 측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 노력 중이라고 했다”고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청와대는 또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 (중략) … 통일된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로서 평화의 상징이 되고 동북아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함으로써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한국 측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하며, 남북한 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기를 ‘확고히’ 지지한다고 했다”고 청와대 웹사이트는 아울러 전했다.

우리 청와대의 발표가 전하는 시진핑 주석의 말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하는 시 주석의 말에는 다소의 온도 차가 있다.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과 한국은 반도 문제에서 공동의 이익과 관심을 갖고 있으며, 쌍방이 모두 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이어서 시진핑이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며, 남북 쌍방이 인내와 확고한 신념(定力)을 갖고 부단히 화해와 협력의 과정을 추진하면 최종적으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북핵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종합적인 시책이 필요하며, 각 당사자들은 반도의 형세가 상대적으로 완화하는 계기를 잡아 조기에 6자회담을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아울러 전했다.

우리 청와대 발표 내용의 뜨거운 온도에 비해, 신화통신이 전하는 온도는 다소 낮다. 더구나 신화통신의 보도에는 시진핑이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확실히 반대하며, 중·북 간에는 핵 문제에 관해 이견이 있으나, 현재 중국 측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 노력 중이라고 했다”는 부분은 없었다. 물론 정상회담을 전하는 두 나라의 발표에는 온도가 다를 수 있고, 한쪽이 한 말을 다른 쪽이 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1990년대 초부터 중국 지도자와 외교부의 한반도 정책에 관한 발표를 들어온 경험에 따르면, 이날 시진핑 주석이 한 말의 골자는 “중국은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과 “6자회담을 조기에 재개해야 한다”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중국이 밝힌 “한반도의 자주평화 통일을 바란다”고 하는 말에서 ‘자주적’이라는 말은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중국 경제 담당자들이 덩샤오핑의 “상하이를 용의 머리로…”라고 한 말을 붙들고 상하이 건설을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책에서는 덩샤오핑 시대에 정해진 “한반도의 자주평화 통일 지지”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다.

중국 사람들은 특정 문제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는 타오위(套語·formulistic expression)가 정해지면, 그 말을 붙들고 반복하면서 그 용어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변화를 관찰할 때 그런 키워드(keyword)나 키 센텐스(key sentence)의 변화를 살펴야지, ‘전적으로’ ‘적극적으로’ ‘확고히’ 같은 수식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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