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 어느 대학생의 질문 "북경(北京)만 가시고 베이징은 안 가세요?"

    입력 : 2014.03.31 03:02

    [8] 한자 원음주의 표기 혼란 - 인명·지명 原地音 '외래어표기법'
    젊은 층은 한자 몰라 혼란 더 키워 "중국어 고유명사 한자 병기해야"

    교수가 수업 중에 "다음 주에는 북경(北京) 출장이 있어서 보강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 북경만 가시고 베이징은 안 가세요?"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한자를 잘 모르니 '북경'과 '베이징'이 같은 장소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자로 쓰인 중국의 인명·지명을 원래 음대로 적는 원음주의(原音主義)가 대세를 이루면서 '毛澤東'은 '모택동'이 아닌 '마오쩌둥'으로, '上海'는 '상해' 대신 '상하이'로 적는 표기가 늘어났다. 하지만 젊은 층의 '한자 문맹' 현상이 확대되면서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쓰촨성'에서 온 '사천 요리'?

    이 표기 원칙은 1986년 1월 문교부 '외래어표기법' 제4장 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에서 비롯된다. 외래어는 원지음(原地音)을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 오랫동안 우리 식으로 발음해 온 중국 고유명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명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의 인물은 우리 발음으로, 그 이후는 중국식 발음으로 읽게 했다. 하지만 이를 따르더라도 생몰연대가 1911년 전후(前後)에 걸친 '孫文'이나 '袁世凱'는 '손문' '쑨원'과 '원세개' '위안스카이'가 혼용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식 표기 vs 원음주의 표기 비교 표

    더 큰 문제는 지명이다.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발음으로, 현재 쓰이는 것은 원음으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長安에서 洛陽으로 천도했다'는 문장은 '장안에서 뤄양으로 천도했다'고 써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외래어표기법은 인명·지명의 원음 표기만 규정했기 때문에 '人民日報' '嫦娥一號'는 '인민일보' '항아 1호'로 써야 맞지만 '런민일보' '런민르바오'나 '창어 1호'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四川省'은 '쓰촨성'으로 적어야 하지만 이곳 요리는 '쓰촨 요리'라 하지 않고 '사천 요리'라고 한다. 표기법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데다, 표기법 원칙에도 어긋나는 표기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를 모르니 혼란 더 커져"

    한자 고유명사 표기의 원음주의에 대한 비판도 계속 나오고 있다. 우선 현행 표기법대로 쓴 인명·지명을 발음하면 정작 중국인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송기중 전 서울대 교수). 게다가 특정 인명을 표기할 경우 ①국적 ②생몰연대 ③한족(漢族)인지 조선족(재중동포)인지 여부를 모두 조사한 뒤 ④해당 한자의 중국어 발음과 ⑤그 발음의 한글 표기법을 찾는 복잡한 과정을 일일이 거쳐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의미 전달을 포기한 표기"라는 비판도 있다. '北京' '三峽'을 '북경' '삼협'이라 읽으면, 한자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의 경우 '북쪽에 있는 수도' '세 곳 골짜기'라는 의미를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베이징' '싼샤'라고 읽으면 그저 발음기호일 뿐이라는 것이다(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 '표기의 주체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민이 모르는 주변국 고유명사의 '현지 원음'을 찾아서 읽어주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우리는 우수한 한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고, 이미 새로운 표기 원칙에 대중이 적응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고석주 연세대 국문과 교수). '習近平' '溫家寶'는 국제적 표기가 '시진핑' '원자바오'인데 '습근평' '온가보'라고 써서야 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임동석 건국대 중문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표기상의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며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에 반드시 한자를 병기하고,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합의된 표기 규정을 만들어 여기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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