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학교 교사 이모(59)씨가 정년을 3년 앞둔 작년 연말 명예퇴직 신청서를 냈을 때,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두 이씨를 뜯어말렸다. 다들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이렇게 활발하신 분이 일 안 하시고 집에 있으시면 안 됩니다. 아이들 충분히 더 가르치실 수 있으시니까 계속 하세요."

이씨는 40대 초반에 부장을 1년 맡고 나선 '평교사로 정년퇴직하겠다'고 다짐했다. 교육청에서 내놓으라는 서류 만드느라 수업 종 치고 나서 허둥지둥 교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이씨가 평생 꿈꾼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열의 넘치던 이씨가 힘이 빠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그전 아이들은 이씨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조용히 설명을 할 땐 다시 이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갈수록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 '휴지 버리겠다'며 수업 시간에 갑자기 일어나 돌아다니는 아이, 교사가 지적을 하면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1시간 수업하기가 예전에 온종일 수업한 것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컴퓨터로 동영상 틀어주고 화려한 그림을 보여주며 수업하는 것만 좋아하는데, 이씨는 그런 기술에도 약했다.

이씨는 "내가 아이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가르친다는 자부심이 들지 않았다"며 "이제 그만둬야 할 때라는 생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씨는 지금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각종 무상 복지 예산에 밀려 서울시교육청의 명예퇴직 수당 예산이 제대로 편성되지 못하는 바람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 1258명 중 30%(372명)만 퇴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이씨처럼 교단을 떠나고 싶은데도 못 떠난 교사가 올해 2346명(명퇴 신청자의 55%)이나 된다.

이씨는 "나 같은 '지는 해'보다는 새로 임용 시험에 합격한 교사들이 더 열정도 있고 아이들과 많이 소통하며 잘 가르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