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물건을 훔쳤다고 해서 물건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A thief can steal property, but that does not confer the right of ownership on the thief)."
무기력하게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내준 서방국가들이 '말'로 한풀이를 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종군기자 출신 서맨사 파워 미국 유엔 주재 대사는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를 '도둑'이라고 불렀다.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유엔 주재 대사는 "이런 모욕은 참을 수 없다. 당장 취소하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총 한 발 쏘지 않고 펜으로 크림반도를 합병한 지 이틀이 지나서였다.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안보리 15개국이 모인 임시 회의에서 미국을 포함, 10여개국 유엔 대사가 "크림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는 효력이 없다" "푸틴 대통령이 크림공화국 합병조약에 서명한 것은 불법"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파워 대사는 "러시아는 합병이 합법이라며 톨스토이와 체호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러시아가 국경을 다시 그릴 수는 있어도 사실관계(facts)를 고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리 세르게예프 우크라이나 유엔 주재 대사도 "서방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은 크림반도 주민투표와 푸틴 대통령의 합병조약 서명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크림반도 현장에서는 러시아의 병합 작업이 서방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안드리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장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군인을 크림반도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섣부른 군사행동으로 러시아를 자극해 정치적으로 친(親)러시아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본토의 동부 지역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크림반도를 포기한 것이다.
러시아는 크림자치공화국을 우크라이나 경제권에서 분리시키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러시아는 17억달러(약 1조8000억원)를 투자해 크림반도에 자체 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크림반도는 전력의 80%, 천연가스의 65%를 우크라이나 대륙에서 공급받고 있다. 또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가르는 케르치 해협에 다리를 놓고 철도와 해저 터널을 건설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유럽연합(EU) 28개국 정상들은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틀 일정으로 만나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한다. 러시아 고위직 21명에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 조처를 한 EU가 제재 대상을 좀 더 확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러시아 국가 하원은 20일 찬성 445대 반대 1로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을 비준했다. 이로써 남은 법적 절차는 21일 상원 비준만 남았다. 완전 합병은 내년 1월 1일에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