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은 과거사·영토 문제로 오랜 갈등을 빚어온 한·일 양국이 관계 정상화로 가는 물꼬를 트는 동시에 북핵 공조 등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제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일 양국 간 정상회담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상징적 의미의 약식 회담 될 듯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은 미국 측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일 협력 체제 강화를 원하는 미국 측이 3자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미국 측 고위 인사도 일부 언론과 만나 "이번에 한·일 정상회담은 몰라도 한·미·일 정상회담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고민했지만, 최근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 수정 가능성을 부인하는 등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수용키로 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민감한 한·일 정상회담보다는 미국이 끼는 3국 회담을 더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3자 회담은 별도로 시간과 장소를 잡고 의제를 조율해서 배석자까지 두는 공식 회담이 아니라 정상회의 과정에서 세 정상만 따로 짧게 만나 큰 현안 위주로 대화를 나누는 '약식 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의장 부근에서 30분가량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실무 회담이라기보다는 관계 개선을 위한 상징적 회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핵이 주 의제… 과거사 구체적 논의 안 할 듯
3국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동북아 정세 등에 대한 한·미·일 3각 협력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핵안보가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인 데다 북핵은 한·미·일이 공동으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17일 중국의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에 간 것은 미·중 간에 논의된 북핵 해법을 전달하고 북한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일도 이번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원자력 방호·방재 문제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글로벌 현안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일 간 현안인 과거사 문제는 공식 의제에선 빠질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다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상징적 의미의 발언은 오갈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태도 따라 한·일 정상회담 열릴 수도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가 주목된다. 정부 당국자는 "3국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이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더 진전된 조치나 행동을 취한다면 양국 간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다음 달 초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과정에서 또다시 독도·과거사 논쟁을 유발할 경우 정상회담은 멀어질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복원될 것이냐도 관심사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3국 간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부각시킬 수는 있겠지만,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은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참석하며,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