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일제의 전쟁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고노 담화가 있다"며 "수정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終戰) 50주년인 1995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60주년인 2005년에 나온 '고이즈미 담화'를 거론하며 "이들 담화를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덜어 드리고 한·일 관계와 동북아 관계가 공고히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특정 발언을 긍정 평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미국 국무부도 "환영한다. 긍정적 진전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요즘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회담 또는 한·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예측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지만 한·일 관계 단절 상태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베의 이번 발언과 곧 이은 박 대통령의 긍정 평가는 한·일 관계를 풀어갈 외교적 단초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나 아베가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번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당장 풀릴 수는 없다. 아베는 이번에도 '이른바 고노 담화'라는 표현을 썼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취지를 전체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아베의 고노 담화 관련 발언이 나온 14일에도 '고노 담화 재검증'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아베 내각은 다음 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을 계기로 중국에 맞설 미·일 동맹을 과시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도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아베의 이번 발언 역시 그 일환(一環)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바마 순방 후 '아베의 일본'이 또 표변(豹變)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섣부른 한·일 관계 개선 조치는 한국민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 한국 정부와 한·일 관계 전체를 회복 불능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어렵게 운을 뗀 한·일 관계 개선의 기대를 계속 이어갈 책임은 일본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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