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비대칭 거울서 모티브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4.03.12 03:40

    [21일 개관 앞두고 訪韓한 설계자 자하 하디드 인터뷰]

    "유기적인 곡선으로 시각적 차분함 살려
    지붕은 잔디로 덮여 있어 건축물 자체에 地形 녹아들어
    DDP 스케일이 너무 크다고? 무얼 기준으로 과하다는지… 박스 형태라면 더 커졌을 것"

    195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 살던 유명 정치인 무하마드 하디드가 아내, 일곱 살배기 딸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나들이 갔다. 가족의 목적지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다. 가구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공방이었다. 미감(美感) 좋았던 부모는 맘에 드는 디자인의 가구를 사러 이웃 나라까지 간 거였다. 그곳에서 부모는 아이방에 걸 거울 하나를 산다. 네모반듯하지도, 원형도 아닌 특이한 비대칭 거울. 아이는 집으로 와 그 거울에 맞춰 자기 방을 재배치했다. 며칠 후 아이의 방을 본 사촌이 자기 방도 똑같이 꾸며달라 하더니, 급기야 숙모 침실까지 설계하게 됐다. 그리고 진짜 건축가가 됐다. 이 시대 최고의 여성 스타 건축가인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64)다.

    중동의 거울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비정형 사랑이 57년 뒤 서울 한복판에서 집대성됐다. 5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21일 개관하는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다. 옛 서울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거대한(대지 6만2692㎡, 연면적 8만6574㎡) 우주선 모양으로 내려앉은 이 건물엔 직선이 하나도 없다.

    11일 DDP에서 만난 자하 하디드는 자신의 건축을 닮은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하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을 휘두른 그는 남들과 똑같이 입기 싫어 열 살부터 특이한 패션을 즐겼다.
    11일 DDP에서 만난 자하 하디드는 자신의 건축을 닮은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하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을 휘두른 그는 남들과 똑같이 입기 싫어 열 살부터 특이한 패션을 즐겼다. /이덕훈 기자
    "정말 꼬마 때 얘기예요. 그 거울 참 신기했죠(웃음)." 11일 DDP VIP룸에서 독대한 하디드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파우더향 향수 내음이 밀려왔다. 장갑, 레깅스, 구두, 스카프, 프라다 파우치, 모두 검은색으로 휘둘렀다. 펄이 감도는 팥죽색 매니큐어를 곱게 칠한 손톱, 자신의 건축을 닮은 유기적 디자인의 커다란 반지, 깊게 칠한 마스카라…. 예상보다 훨씬 여성적이었다. 건축계를 향해 "남성의 전유물(boy's club)"이라고 쓴소리하며 "내가 남자라도 사람들은 날 디바라고 부를까?(Would they still call me a diva if I was a man?)"라고 항변했던 그는 "여성 건축가를 향한 편견은 적어졌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하디드는 "DDP 공사 과정을 사진으로 워낙 많이 봐서 익숙한데, 실제 보니 훨씬 더 아름답다. 건축은 설계도를 해석하는 과정인데 이번 해석은 정말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그는 또 "20년 전부터 부지 지형과 건축물의 조화를 고민해 왔는데, 지형을 의식하다 보니 곡선을 많이 쓰게 됐다. DDP는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고 전시장 자체가 지형에 녹아들었다. 인공적으로 새로운 지형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낯선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예리한 각보다 곡선을 더 느낀다는 점도 유선형 디자인에 담긴 철학이다. "DDP엔 다목적 공간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유기적인 곡선으로 시각적으로 차분함을 줬습니다. 직선을 사용해 이 많은 공간을 넣었다면 훨씬 복잡한 구조가 됐을 겁니다."

    하디드는 학창 시절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등 기존 설계 방식으로는 자신의 건축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림'을 그려 설계했다. 영국 AA스쿨 시절 스승이자, 훗날 동업자가 된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는 하디드를 "자기만의 독특한 회전 방식을 지닌 행성"이라고 불렀다.

    (위 사진)자하 하디드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옥상에 잔디가 덮여 있고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구도의 세상이 바라보이는 것. 그가 말하는‘신선한 건축’이었다. (아래 사진)DDP에서 자하 하디드가 본지 김미리 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위 사진)자하 하디드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옥상에 잔디가 덮여 있고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구도의 세상이 바라보이는 것. 그가 말하는‘신선한 건축’이었다. (아래 사진)DDP에서 자하 하디드가 본지 김미리 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가 버진 시몬 버트렌드 제공·이덕훈 기자
    "DDP의 스케일이 너무 큰 것 아니냐"고 하자 "무엇을 기준으로 과하다는지 다시 질문하고 싶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스케일은 건축가에게 주어진 요건입니다. DDP처럼 특정 기능이 주어진 건물을 설계할 땐 주방, 부엌, 침실처럼 줄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박스 형태로 건축물을 지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겁니다." 같은 비판을 마주한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에 대해서도 "올림픽 경기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스케일이 있는 거다. 그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주변의 콘텍스트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DDP 같은 문화 프로젝트를 할 때는 도시 맥락을 재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주변 환경도 중요하지만 '신선함' '새로움'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테레오 타입은 죽기보다 싫어 열 살 때부터 일부러 이상한 옷만 골라 입었다는 그다운 답변이다.

    하디드가 DDP에서 머문 3시간 30분 동안 기자는 그의 옆을 지켰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던 하디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 쉴 새 없는 스포트라이트와 관계자들의 질문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다리가 아파 300m 정도 되는 짧은 거리도 승용차와 골프 카트를 번갈아 가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자신이 만든 비정형의 공간을 만끽할 여유가 정작 그에겐 없어 보였다.


    [자하 하디드는]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레바논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 런던의 건축 명문 AA스쿨에서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의 가르침을 받는다. 비정형의 유기적인 디자인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평을 받아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비트라 소방서(1994), 런던올림픽 수영장(2012),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2022년 카타르월드컵 주경기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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