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동(東)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전후 최대의 재해 속에서도 빼어난 질서 의식을 보여줬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의 시민 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등 각국이 일본에 보낸 성금엔 일본이 고통을 승화시켜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이후 군국주의로 치달은 역사가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우려는 일본을 향한 신뢰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이후 3년은 신뢰가 우려에 묻혀버린 시간이었다. 대지진 후 정치의 무기력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증폭된 일본 재생(再生)의 열망은 기대와 전혀 다른 일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폭주(暴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엉터리 뒷수습보다 더 심각한 동북아 위협 요소로 부상했다. '인류 정신의 진화'란 평가를 받은 일본에선 지금 대낮에 "한국인을 죽이자"는 섬뜩한 구호가 들리고, 대지진 때 무력했던 일본 공권력은 '표현의 자유'란 이름 아래 이를 방치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반대 없는 정치'

대지진 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전문가들은 '재해 후(災害後) 민주주의'라는 틀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패전 후 평화헌법에 기초해 정파 간 합의와 양보, 국민 여론을 중시하는 '전후(戰後)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대지진·쓰나미·원전 사고라는 3중 재해를 거치면서 일본 특유의 민주주의 프로세스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직후 센다이(仙臺) 근교의 다가조(多賀城)시에서 이재민들이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위). 하지만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와 배외(排外)주의가 득세하면서 사회가 크게 변했다. 작년 5월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이 도쿄 시내에서 “한국인들을 죽이자”는 등 섬뜩한 구호를 외치며 반한(反韓)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아래).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분카가쿠엔(文化學園)대 교수는 "정부가 대지진 수습에 실패하면서 일본 국민이 기존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불신하게 됐다. 이런 불신이 '강력한 일본'을 명분으로 한 아베의 일방통행 프로세스를 용인하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은 '정책'에 대한 지지와 '정권'에 대한 지지가 달리 나타나는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집단적 자위권, 원전 재가동, 특정비밀보호법 등 일련의 우경화 정책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더 높지만 아베 정권은 6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미쿠리야 다카시(御�貴)씨는 "3·11 대지진 이후 '반대 없는 정치'라는 불가사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간토 대지진 때와 유사하다는 비판도

고바야시 마사야 지바(千葉)대학 교수는 '전전(戰前)과 겹치는 일본'이라는 논문에서 "유감스럽게도 3·11 이후 일본은 치안유지법과 유사한 특정비밀보호법을 만들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되는 등 전전 파시즘으로 치달을 때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에도 일본은 지금처럼 신속한 복구와 민심 안정에 실패했다. 당시 성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일본 경찰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것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를 했다. 조선인이 일본 여성을 강간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이었다. 일본 정부의 범죄적 행동은 재일 조선인에 대한 잔혹한 학살로 이어져 한·일 과거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일본 스스로도 민주주의 탄압과 견제 세력의 몰락, 군국주의로 이어져 결국 파멸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지금 일본 사회도 배외(排外)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인을 타깃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증오를 뿜어내는 시위와 서적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지성(知性)의 본산'이라고 평가받던 도쿄 대형 서점 산세이도(三省堂)조차 이런 서적을 위해 '특별 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일본 사회가 군국주의로 회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는 "극단적인 주장이 커졌지만 그에 맞서는 양심 세력이 건재하다"며 "일본 사회는 여전히 자정(自淨)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