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추억을 읽는 30~40代… 1980년대 아동全集, 부르는 게 값

조선일보
입력 2014.03.08 03:02

절판 도서 찾아 삼만리 …30년된 책, 웃돈 주고 구해 헌책방 "없어서 못 팔아"

어릴 때 읽던 추억의 책…아이와 보고 싶다는 엄마…'응답하라·건축학 개론' 등…최근 복고 열풍도 한몫

아예 재출간 하는 출판사들…'계몽사 문고' 전집 복간 중동서문화사도 출간 앞둬…달라진 삽화·세련된 표지…독자들 향수 자극 못해 복간본 시장 반응은 시들

1970~1980년대 대표적인 아동도서 출판사였던 계몽사는 요즘 1977년 출간했던 '계몽사 문고'(전 120권) 복간(復刊)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첫걸음으로 최근 '삼총사'와 '폼페이 최후의 날'을 다시 냈다. 계몽사는 지난해 1984년판 '어린이 세계의 동화'(전15권)를, 2012년엔 '어린이 세계의 명작'(전15권)을 복간했다. 동서문화사도 1980년대의 '에이브(ABE) 전집'(전 88권)과 '메르헨 전집'(전 55권)을 이번 여름방학을 겨냥해 다시 출간할 계획이다.

절판 아동도서 찾아 헤매는 30~40대

'추억의 아동문학전집' 복간의 원동력은 그 책을 기억하는 30~40대 독자들. 계몽사, 계림출판사, 금성출판사 등이 1970~1980년대 펴낸 아동전집이 헌책방에서 고가에 거래되며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1980년 출간된 계몽사 '디즈니 그림명작'은 60권 전질(全帙)이 중고 시장에서 40만원 선에 거래된다. 30년 된 헌책치곤 비싸지만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경남 창원의 헌책방 영록서점 직원은 "서점 홈페이지에 책이 올라오자마자 팔린다"고 했다. 회사원 김수영(35)씨는 최근 1992년판 '에이브 전집'(전 88권)을 30만원에 샀다. 책 출간 당시 가격은 권당 3990원이다. 김씨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었던 이 책을 다시 읽을 수만 있다면 돈은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좋은 구성과 추억의 힘이 강점

낡아빠진 아동도서 전집이 세월을 이겨내고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30~40대 엄마들이 어릴 때 읽었던 책의 추억을 아이와 공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 세 살 아들을 둔 임소혜(40·교수)씨는 "유치원 때 읽었던 계몽사 디즈니 그림명작을 아이와 함께 읽고 싶다"고 했다. 옛날 전집의 구성이 좋은 것도 강점.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엄마는 "옛날 전집은 유명 세계 동화를 한 번 '떼고' 지나갈 수 있도록 구성됐는데 요즘엔 그런 전집이 드물다"고 말했다.

회원 8700여명이 옛날 만화·아동전집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모임인 네이버 카페 '클로버문고의 향수' 매니저 이지원(45·디자이너)씨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라 상당수 전집이 일본 걸 베꼈다.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엄선된 명작들로만 구성된 전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전집을 읽었던 경험이 일종의 '집단 기억'으로서 1970~1980년대에 대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응답하라 1994' '건축학 개론'의 주인공인 30~40대가 출판에선 유년기를 추억하며 '복고(復古)'를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출판평론가 한미화(46)씨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책도 추억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또래들끼리 어릴 때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취향의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결속력도 강해진다"고 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45)씨는 "70년대엔 어린이책이 '계몽사' '계림출판사' 정도밖에 없었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추억도 더 강력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책을 돌아보는 책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3)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이 대표적. '비밀의 화원'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 자신이 유년기에 읽었던 이와나미(岩波) 소년문고 50권을 추억하는 이 책은 독자들의 호평 속에 꾸준히 팔리고 있다. 번역가 정은지(44)씨의 '내 식탁 위의 책들'(앨리스)은 '빨강머리 앤' 등 동화에 등장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행작가 오소희(43)씨의 '어린왕자와 길을 걷다'(북하우스)는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다시 읽은 책. 오소희씨는 "어른이 되고 나니 어린이문학에 삶의 지침이 모두 담겨 있었다는 걸 알겠다"고 했다.

복간본 시장 반응은 "글쎄"

그러나 복간된 책에 대한 시장 반응은 시들하다. 2012년 5월 3000세트 한정으로 복간된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은 현재까지 2000세트 정도만 팔렸다. 독자들이 문장을 현대식으로 손보거나, 표지를 새로 디자인한 복간본보다는 중고책을 선호하기 때문. '클로버문고의 향수'의 이지원씨는 "추억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은 삽화의 색채, 종이 질에도 민감하다. 어릴 때 책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아예 다른 책'이라 여긴다"고 했다.

특히 '삽화'는 민감한 문제. 중고 어린이책 시장의 희귀 아이템인 금성출판사 '칼라텔레비전 세계교육동화'(1972)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개정판이 인기가 없다. 개정되면서 바뀐 삽화에 수집가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지원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위해 옛날 책을 읽는 건데 삽화가 바뀌면 어린 날이 완벽하게 재현되지 않는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린이들은 글보다는 그림에 빨리 반응하며 기억을 형성한다. 그래서 어릴 때 읽은 책의 '그림'이 바뀌면 추억까지 변색됐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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