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 작품 그 도시]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 눈부신 소소함

조선일보
  • 백영옥·소설가
입력 2014.03.08 03:02 | 수정 2014.03.08 17:10

에세이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미국 뉴욕

참 이상하게도 회사에 다니던 옛날이나 회사에 다니지 않는 지금이나 월요병은 똑같다. 우연히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에세이집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를 읽은 건 도무지 일을 하고 싶지 않던 월요일 오후였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유머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 남자는 행위예술가로 성공하고 싶어서 시카고에 있는 미대에 들어갔다가 정해진 절차처럼 무조건 튀어야 살아남는다는 뉴욕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뉴욕에서 그는 청소부와 이삿짐센터 직원을 전전한다. "거기, 아저씨! 어항 조심해 운반하세요. 그 안의 물고기가 임신한 것 같아요!"라고 꽥꽥 소리 지르는 자의식 과잉 뉴요커들을 상대하는 게 어떤 것인지 처절히 깨달으면서 말이다. 꿈을 안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뉴욕에 왔으나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는 이런 일은 뉴욕에선 사실 매우 흔한 불행이다.

"여행하는 미국인은 뉴욕보다 테헤란에서 더 환대를 받는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근본 원칙이 무엇이던가. 우리와 남을 명백히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뉴욕의 모토가 '네 고향으로 돌아가!'나 '우리도 네가 싫어!'로 번역될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에 층층이 불이 켜져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에 층층이 불이 켜져 있다. 에세이집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의 저자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행위예술가가 되기 위해 뉴욕에 왔지만,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그는 예술 대신 라디오 방송국에서 자신의 실패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기를 얻는다. / 조선일보 DB
하지만 그는 곧 라디오 방송국에 들어가 자신의 '망한 인생'이나 '해괴망측한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기를 얻게 된다. 실패담을 멋지게 번역해 홈런을 날린 셈이다. 한 남자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얘기한 건 실제로 세다리스가 자신의 열두 고비를 절절히 기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최첨단을 자랑하는 뉴욕에서 사는 동안 그가 느낀 감정이라든가, 파리에서 (도무지 늘지 않는) 프랑스어를 배우며 외국인으로 사는 법에 대한 것들이었다.

"소호는 마카로니 샐러드 같은 곳이 아니다. 소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재주꾼들이 옥수수를 먹여 키운 종달새를 갈색이 나도록 구운 요리를 내오거나, 활활 타는 불에 아주 잠깐만 살짝 익힌 민물고기에 투명하게 처리한 사향 오일을 따뜻하게 데워 뿌리고 가마에서 구운 칠레 버섯으로 귀퉁이를 장식한 요리를 내놓는다. … 요리를 미술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다다이즘 시대가 아닐까."

고백하자면 내게도 이런 전위적이며 해체적인 음식의 시대가 있었다. '레스토랑 담당 기자.' 타인이 보기엔 매혹적이고, 본인이 경험하기엔 다소 곤란한 지점이 교차하는 그 직함이 내게도 주어졌다. 나는 '비주얼'이 생명인 패션 잡지 음식 담당 기자였다. 음식이 나오면 일단 화보를 위해 사진부터 찍는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나면 음식에 최적화된 수분과 증기는 이미 다 증발하고 사라진다. 즉 퍽퍽한 스테이크와 불어터진 냉면처럼 최악의 음식이 기다리는 셈이다. 요리사들은 긴장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음식을 기자가 맛있게 먹나 안 먹나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는데, 그때마다 마치 '먹기 대회 3회 연속 우승자'처럼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양고기를 주문하면 같이 간 사람이 시킨 전갱이 요리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음식이 나온다. 요즘은 어떤 요리라도 늘 아무 생각 없이 위로 높게 쌓은 모습으로 나온다. 옆으로 누운 내용물은 하나도 없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도심에 늘어선 높이 치솟은 빌딩들 같다. 접시는 값비싼 땅이고, 요리사가 작은 자투리땅과 무제한 일조권을 사들인 것 같다. 휴(친구)가 주문한 샤프란 링귀네는 건축물처럼 새우를 층층이 쌓고 맨 위를 터번으로 장식한 것 같다. 링귀네가 그렇게 접시 한가운데에 놓여 있으니 나머지 텅 빈 접시 공간은 주차 공간으로 보인다."

이 글을 읽다가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한 달에 서너 군데 이상 레스토랑을 취재하다 보니 나는 요란하고 화려한 음식에 질려 최소한의 재료로 만든 가정식 백반을 더 좋아하게 됐다. 새벽 6시 텃밭에서 막 캐낸 유기농 채소로 만든 쌈과, 조선의 왕이 먹던 것 그대로를 재현한 구절판, 20년 된 묵은지 찌개와 인산 죽염을 켜켜이 넣어 구운 돼지볼때기 찜 같은 요리보다는 그냥 흰밥에 김치찌개, 김으로 끝나는 밥상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탑처럼 놓은 요리가 아닌, 옆으로 넓은 핫도그를 보자 나는 마음이 들뜬다. 그렇다. 핫도그는 그렇게 단순하고 변함없다. 보자마자 단박에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저자 세다리스는 뉴욕의 최신식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이렇게 외치는데, 청담동에 있던 어느 프렌치 레스토랑을 취재하고 나온 날 내가 그랬다! 그날 나는 쥐꼬리만 한 음식을 먹고 나서 나중에 김밥 한 줄과 컵라면 하나를 사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MSG로 잔뜩 범벅이 된 식사였지만 행복했다. 무엇보다 배가 불렀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파리에서 미국 영화를 즐겨 보는 외국인'이라는 황당한 제목의 글도 꽤 재미있다. 특히 파리로 놀러 온 친구들에게 저자가 변명하듯 하는 말을 들어보면 더 그렇다.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표지
"결국 나는 지도와 우리 집 비상 열쇠를 준다. 친구들은 노트르담을 보고, 나는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를 본다. 파리에 살면서 미국 영화만 보는 것은 낭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카이로에 가서 치즈버거를 먹는 셈이라나. 사람들은 말한다. 영화는 미국에서도 볼 수 있잖아? 틀린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미국의 옛날 영화 상영관은 비디오 때문에 죽었다. 보리스 카를로프 영화를 보고 싶으면 비디오를 빌려서 텔레비전으로 봐야 한다. 파리에서는 비디오를 빌리는 값이나 극장에 가는 값이나 마찬가지다."

이상형이 '웃기는 남자'인 나는, 아무리 해도 프랑스어가 늘지 않았다는 이 미국인이 파리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프랑스어가 극장 앞에 서서 하는 "한 사람요!"라는 말이었다는 대목에서 실컷 웃었다.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데비이드 세다리스의 에세이집.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