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곡선은 정중했고, 직선은 진중했다. 그렇게 걸린 30여벌의 옷은 소리도 없이 몸에 휘감기듯 말을 걸어왔다. 최상의 천연 소재로 지어낸 고급 맞춤복. 그 압도적인 풍경에 할 말을 잃을 때쯤, 뚜벅뚜벅 키가 훤칠한 노신사가 부드럽게 걸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국내 정상급 패션 디자이너 배용(71)이었다.

디자이너 배용이 지난 26일 부산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소향 갤러리에서 패션 전시를 열었다. 그의 2014년 가을·겨울 의상 컬렉션을 쇼가 아닌 예술 전시의 형태로 풀어낸 것으로, 국내에선 보기 드문 패션 전시다. 고희(古稀)가 넘은 디자이너가 아직도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있을 줄이야. 배씨는 그러나 "1971년 데뷔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단 하루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옷은 그림처럼 병풍처럼 배용의 뒤를 에워쌌다. 배용이 그 한가운데 서서“이게 내 인생”이라고 말했다. 옷도 속삭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만들었고, 내가 또 그를 만들었다고.

이유 없는 창작은 없다. 매 시즌 살롱쇼와 패션쇼를 열었고, 1980년대 파리 프레타포르테와 밀라노 컬렉션에까지 진출했던 그였지만, 전시에 욕심을 낸 건 아주 특별한 영감(靈感) 때문이었다. "작년 9월에 '그 친구'가 어느 날 사진을 보내왔어요. '선생님 보셨어요?' 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Alaia)의 전시회 사진이었어요. 전기가 '찌릿' 흘렀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전시가 열리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선생님이 하시면 되죠'라고 했죠."

'그 친구'란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70)씨다. 이 두 사람은 4년을 만났고, 독일 뮌헨과 부산을 오가며 창작을 격려하고 우정과 열정을 나누는 사이다. 배씨는 "그때부터 홀로 작업실에서 전시 작업 준비를 시작했다"며 싱긋 웃었다. 그의 볼도 살짝 붉어졌다.

전시는 크게 세 요소로 나뉜다. 배씨의 2014년 가을·겨울 의상에 터키 터번과 큼직한 모자, 화려한 액세서리 등을 섞어 대담하게 연출한 공간이 하나, 배씨의 작업실을 충실하게 구현한 작은 방이 둘, 그리고 그가 평생 전 세계를 돌며 모아온 골동품 다리미와 그의 스케치를 모아 보여주는 공간이 셋. 배씨는 "패션쇼가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와 환상, 그 상업적인 가능성으로 승부를 겨룬다면, 전시에선 옷의 영속성과 만드는 과정, 디자이너의 철학과 고민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스케치를 하고, 패턴을 만들고, 짓고, 입히죠. 그 과정 자체가 때론 구도(求道)에 가까워요. 유행에 휩쓸려도 안 되고, 나만의 관심사에만 매몰돼도 안 되니까요."

배씨의 옷은 그래서 40여년 동안 '클래식(古典)'의 영역으로 분류돼왔다.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생로랑이 그랬던 것처럼 때론 패치워크로 코트를 만들고, 때론 큼직한 꽃송이를 붓질한 옷을 발표한 적도 있지만, 그의 옷은 언제나 격식(格式)의 테두리 속에서 미묘하게 표정을 바꿔왔다. 배씨는 "앞으로 패션 전시를 매년 열면서 조금씩 더 큰 규모로 대중 앞에 설 계획"이라고 했다.

배씨의 전시 소식을 들은 걸까. 톱모델 장윤주는 4일 오후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디자이너 배용을 아시나요? 한국의 '발렌티노'라고도 불릴 만한 분이죠. (중략) 제가 신인이었던 18세, 선생님께선 '넌 키는 작은데 묘한 매력이 있다'며 패션쇼 오프닝과 피날레를 맡기셨어요. (중략) 14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의 옷을 입고 무대를 걷고 싶습니다. 그때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