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처음엔 애물단지였다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14.02.22 03:02

    [주말엔 독서 삼매경 '도시' 읽기]

    1889년 높이 333m로 세운 에펠탑, 시민 사랑 받으며 파리 상징으로
    높이 경쟁 벌이던 랜드마크… 지금은 낮고 넓은 건물이 각광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책 사진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송하엽 지음|효형출판|334쪽|2만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차를 몰면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동어반복'. 덤불과 선인장, 황무지가 지겹게 이어진다. 길도 언덕을 넘느라 잠깐 휘어질 뿐 줄곧 직선이다. 그렇게 네 시간 달리면 신기루처럼 고층 빌딩들이 나타난다. 라스베이거스는 잭팟의 욕망을 먹고 자라왔다. 모방 건축물이 넘치는 이 사막 도시는 마카오·두바이 같은 라이벌이 등장하고 엔터테인먼트 개념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랜드마크(landmark)를 모색하고 있다.

    랜드마크는 랜드(땅)와 마크(이정표)가 합쳐진 단어다. 먼 옛날에는 산이나 큰 나무, 바위가 이정표였다. 이집트 피라미드, 유럽 성당, 현대의 마천루에는 더 높은 곳에 닿으려는 욕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높이 경쟁은 끝났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문명의 궤도가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으로 수정됐기 때문이다. 오는 3월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문을 연다. 동대문 패션타운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이 알루미늄 비정형 건축물이 21세기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수직에서 수평으로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과 세계박람회를 기념하고 기술적으로 높이 1000피트(333m)를 달성하려는 목표로 지어졌다. 미국은 1930년 뉴욕에 크라이슬러 빌딩을 세우고서야 열등감을 떨쳐냈다. 에펠탑은 해마다 2억여명이 방문하는 랜드마크이지만, 초기 반응은 싸늘했다.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 그 흉물 속 카페에 가는 게 낫다"(소설가 모파상)는 조롱까지 들었다.

    5년 공사 끝에 베일을 벗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사진
    5년 공사 끝에 베일을 벗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알루미늄 건축물(높이 29m)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이태경 기자

    에펠탑에 대한 인식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뀐 과정은 랜드마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에펠탑에 장착된 라디오 송신기가 독일군 통신 체계를 방해해 전투에서 승리하자 프랑스의 수호신이 된 것이다. '에펠탑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싫어하던 대상도 오래 존재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익숙해지면서 애증 관계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5층 높이(65m)로도 매혹적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자연과의 조화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결정한다. 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한 영국 테이트 모던미술관처럼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폐기된 시설이 생산적 공간으로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송하엽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고층 건물이 즐비한 21세기에는 땅과 길에서 낮아지고 길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사회적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향으로 랜드마크의 조건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환경과의 상호작용

    뉴욕에서 도시 위를 지나가던 화물 열차길(High Line·하이라인)은 폐선으로 한동안 흉물처럼 방치됐다. 철거하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운 이 골칫거리가 이젠 아늑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는 청계고가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했다. 두 사례 모두 번잡한 도시에 새 공간을 만들어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하이라인은 시민이 기획부터 참여한 풀뿌리 프로젝트지만 청계천은 하향식 공공 프로젝트다. 효율성은 청계천이 낫다. 하지만 인공 하천은 장기적으로 친환경적이지 않다. 획일적 경관도 아쉽다."

    스페인 빌바오는 1980년대 철강산업 쇠퇴와 테러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면서 도시의 운명은 기적처럼 바뀌었다. 미술관 주변에 호텔·공연장·컨벤션센터가 들어서면서 국제적 문화단지로 성장한 것이다.

    "다수가 공유하는 '열린 랜드마크'가 있어야 문화적으로 건강하다"는 결론에 수긍하게 된다. 서울 DDP의 외형을 놓고 물어뜯어 봐야 부질없다. DDP에 담길 콘텐츠, 무엇보다 대중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랜드마크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주체에 이제부터 사람을 포함시키자는 얘기다.

    [도시 再生 담은 책들]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 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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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캔버스, 부산

    도시라는 장소를 캔버스로 삼는 화가들이 늘고 있다.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구본호, 해피북미디어)는 도시와 마을에 새 숨을 불어넣는 공공미술에 집중한 책이다. 감천문화마을, 안창마을, 꽃마을 등 부산에서 벌어진 사례를 바탕으로 도시의 발전·쇠퇴·재생을 들여다본다.








    '목포의 내일을 걷다' 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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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서 건진 도시계획, 목포

    작업실에서 고민하는 탐미주의를 벗어나 대중과 만나고 소통하며 도시를 재생하는 현장이 펼쳐진다. 1897년 개항한 목포에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한다. 도시행정 전문가가 쓴 '목포의 내일을 걷다'(김종익, 가지)는 구도심이 쇠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외곽만 넓혀가는 목포,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을 고민하며 써내려간 책이다. 관문인 목포항과 KTX역, 유달동 근대문화거리, 온금동, 수협 위판장 등을 훑으며 '인간친화적인 목포'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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