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의 실체(實體)를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 간 1라운드 공방은 검찰의 완승(完勝)으로 마무리됐다.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은 17일 검찰이 그동안 제시한 각종 수사 기록을 증거물로 삼아 이 의원에게 징역 12년의 중형(重刑)을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 요지는 "RO는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목적한 조직으로 2013년 3월부터 내란을 사전 준비하면서 유류저장소·통신시설 파괴를 논의했고 그 총책은 이석기 의원"이라는 것이었다.
①RO는 폭력혁명을 위한 비밀 조직
내란 음모 사건의 핵심 쟁점인 RO의 실체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 주요 수사 결과를 100% 인정했다. 변호인 측은 "RO는 국정원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RO는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수령관에 기초한 지휘 통솔 체계를 갖춘 비밀 지하 혁명 조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보자 증언을 바탕으로 RO는 ▲명칭 ▲3대 강령(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이를 전파하고 자주·민주·통일 실현) ▲조직 체계(5대 권역, 중앙위 등) ▲5대 규율과 가입 절차를 가진, 실재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②RO의 총책은 이석기
재판부는 RO 총책을 이석기 의원이라고 지목했다. 비밀 회합 녹음 파일에는 이 의원이 '대표님' '남쪽의 수(首)' '우리의 수령님' '혁명의 수뇌' 등으로 언급됐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이 의원은 RO 조직의 총책으로서 위상과 역할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석기 피고인은 회합에서 지속적으로 명령과 지시조 발언을 한 점, 130여명 참석자 앞에서 자신의 불쾌감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RO의 총책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녹음 파일에서 이석기 의원이 김근래 피고인을 가리켜 '김근래 지휘원'이라고 칭했다는 데 대해 재판부는 "수차례 들어본 결과 '지휘원'이라고 언급한 게 맞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변호인 측은 그동안 '김근래, 지금 오나'라며 지휘원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③제보자 이씨 진술 믿을 만하다
RO 제보자 이씨의 증언은 내란 음모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씨 진술의 신빙성, 구체성, 태도의 지속성 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씨가 10년간 RO 조직 활동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진술했고, 진술 태도 또한 자연스럽고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가 법정에서 RO의 실체를 밝혀 국민에게 위험을 알리겠다며 당당하면서도 확신에 찬 진술을 한 만큼 그의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④마리스타 회합은 내란음모 회합
재판부는 작년 5월 10일과 12일 열린 비밀 회합에 대해 "RO 조직이 군사적 통일 혁명 완수를 위한 혁명적 결의를 다지는 자리"라고 규정했다. 폭력을 통한 내란을 음모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작년 3월 조직원들이 세포 모임을 갖고, 폭동을 위한 주요 시설 정보를 수집한 것은 내란을 위한 사전 준비 행위"라며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되면 수(首·이석기 지칭)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지 폭동에 나설 준비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스타 모임은 평화를 논의하는 정세 강연 자리였고, '폭탄' '총기' 발언은 우발적 표현"이라는 변호인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평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과격 발언도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⑤내란 음모의 실현 가능성 존재
내란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헌(國憲) 문란 목적, 실질적 위험성과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비밀 회합에서 논의된 기간시설 파괴 등 테러 행위는 소수 인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고, 폭동의 세부 계획이 없었더라도 논의된 내용으로 볼 때 폭동의 실현 가능성과 위험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 발발 시 후방 교란을 통해 대한민국의 기능 장애와 사회 혼란을 일으켜 북한에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려 한 점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⑥내란 선동과 국보법도 위반
이적 표현물을 다량 소지하고 '혁명동지가' 등 북한을 찬양하는 혁명 가요를 불렀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의원 주거지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압수된 김일성 회고록과 같은 북한 서적 등은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적성(利敵性)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RO(Revolutionary Orga nization)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조직한 비밀 혁명 조직. 검찰은 이 의원, 통합진보당 간부 등 RO 조직원 130여명이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수련원에 모여 전화국·유류저장고 등 주요 시설 파괴를 모의하는 등 폭동을 계획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