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시진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6일 출국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0개월 동안 5차례 회동하며 전례 없는 '중·러 밀월'을 과시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오는 5월 푸틴 방중과 10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도 다시 만난다.

이 같은 시진핑 주석의 대외 전략은 전임 지도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이 구사했던 것과 유사한 대목이 많다. 이런 전략은 마오쩌둥이 공산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주적(主敵)을 확인하고, 동맹을 구축해 대항하며, 적의 동맹을 분열시켜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에 맞서 과거의 적이던 러시아와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푸틴 대통령을 소치에서 5번째 만날 예정이지만,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 영토) 영유권 갈등으로 러·일 간에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과 러시아(옛 소련)는 1960~70년대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앙숙이었다. 1969년에는 중·소 국경에서 두 차례 무력 충돌을 벌였다. 1975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군하자 소련은 베트남과 손잡고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썼다. 베트남에는 중국을 겨냥한 소련제 미사일이 배치됐다.

1977년 재집권한 덩샤오핑도 대외 정책에서는 마오의 지침을 따랐다. 덩은 그동안 적대국이던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 소련의 포위를 뚫으려 했다. 그는 14개월 동안 미얀마·네팔·북한·일본·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미국을 차례로 돌며 우군(友軍)을 확대했다. 순방국은 북한을 제외하고 모두 비공산권 국가였다. 덩샤오핑은 소련과 가깝던 인도를 소련에서 떼내기 위한 외교 전술도 펼쳤다.

시 주석의 행보도 이와 비슷하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도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홍콩 성도일보는 4일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필로 쓴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전하며 "중국이 일본을 '적'으로, 한국을 '친구'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또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짓는 등 한국에 미소를 보내고 있다. 한·일 간 역사 갈등을 이용해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을 떼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또 시 주석은 취임 직후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등 주변국을 차례로 돌며 일본의 대중(對中) 포위 전략에 맞서기도 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우경화에 속도를 내는 일본 아베 정권을 사실상 '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나란히 참석하지만 두 사람은 악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공개 브리핑에서 일본을 향해 '악마'라는 단어까지 썼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1970년대 중국의 최대 적이던 러시아는 친구가 됐고, 당시 중국이 손잡았던 일본은 지금 최대 적이 됐다"며 "국제사회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했다.

한편 미국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4일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이 역사적 사명감에 쫓겨 동·남중국해 등에서 침략적으로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는 지역 국가에 큰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명감이란 시 주석이 내건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