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사업을 미끼로 접근한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국가 기밀 등 주요 자료를 북에 넘긴 대북 사업가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현철)는 북한 공작원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하는 등 이적(利敵) 행위를 해온 혐의(형법상 간첩 및 국가보안법상 편의 제공 등)로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이사 겸 코리아랜드 회장 강모(56)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김정은 경호팀에 '카이샷' 기증하자" 제의
검찰에 따르면 강씨는 2012년 3월부터 2013월 7월까지 중국에서 활동 중인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리모씨에게 군부대와 경찰에서 사용하는 무선 영상 송수신 장비인 '카이샷(KAISHOT)' 관련 자료를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카이샷은 헬멧이나 어깨에 무선 카메라를 설치,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작전 현장 영상을 군 지휘부에 송신하는 장비다. 군 지휘부는 작전 상황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면서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카이샷'은 지난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우리 군이 사용해 널리 알려졌다. 미국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두목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때 오바마 대통령 등이 지하벙커에서 실시간으로 사살 현장을 지켜봤던 것과 유사한 성능과 운용체계를 갖추고 있다.
강씨는 장비 제작업자에게 접근해 "북한에 장비를 팔기 위해 우선 김정은 경호팀에 카이샷 20세트를 기증하자"고 제의하고, 납품 실적이 포함된 상세 자료를 입수해 리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납품 실적 자료에는 카이샷을 운용하고 있는 부대와 부대별로 보급된 상세한 사양과 제원이 포함돼 있다"며 "북으로 넘어가면 우리 군의 작전 상황이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3급 기밀로 분류돼 있는 카이샷 송수신 주파수대(帶)와 무선 카메라와 송수신 장비 자체는 북에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작원, 대북 사업 미끼로 포섭
강씨가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것은 대북 사업 명목으로 북한과 중국을 드나들던 지난 1998년쯤이다. 강씨는 공작원 리씨에게 지령을 받고 각종 자료를 수집·전달했다. 리씨는 2000년대 초부터 대북 사업을 가장해 대남 공작을 주도해온 인물로 2010년 '흑금성' 사건과 2013년 북한 해커 연계 금품 수수 사건의 상부선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리씨는 여러 개 가명(假名)과 전화번호를 쓰면서 지금도 중국에서 대남 공작을 하고 있는 인물로 파악됐다.
강씨가 북에 넘긴 중요 자료에는 ▲경기도 평택의 남북 이산가족 396명의 신원 및 가족 명단 ▲남북이산가족협회 설립자 명부 ▲'신의주~평양~개성 고속도로' 건설 설계도면 ▲DMZ 부근 지역의 지형이 자세히 기재된 'DMZ 평화공원 개발계획' 자료 ▲2013년 정부가 승인한 주택 분양 계획 및 표준건축비 자료 등도 포함됐다.
검찰은 강씨가 넘긴 자료가 북한의 군사·첩보작전과 각종 공작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검찰은 강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두 차례 조전(弔電)을 보냈고 김일성 3부자와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북한 월간지 2권을 보관한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대북 공작원과 관계를 맺으면 대북 사업권을 따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대북 사업 투자를 핑계로 국내 기업으로부터 계약금을 받아 챙겨 사기죄로 처벌받은 전력(前歷)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